[데스크라인]사오정, 안녕하십니까

[데스크라인]사오정, 안녕하십니까

 김형. 지난 늦은 밤 6개월 만에 전화로 “어디 내가 일할 만한 곳 없을까”라며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하셨죠. “회사문을 닫고 나니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일할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형의 말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벤처기업 대표였던 김형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신문사 기자에게까지 ‘민원’을 넣는 시절이 됐나 봅니다. 명동과 종로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울분을 토하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휴머니스트’ 김형이 제게 이런 부탁을 해왔다는 게 어리둥절했습니다. 가슴이 메어옵니다.

 김형.

 ‘사오정(45세 정년)’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이 한창 나이에 말입니다. 내일 아침 반찬거리와 학원비, 등록금 걱정을 하는 아내 앞에서 쓴웃음을 지어야 하는 나이입니다. 무시무시한 입시와 취직이라는 관문을 거쳐, 짧으면 15년, 길면 20여년 직장생활을 한 40대가 떠날 것을 고민하는 악몽 같은 시절이 왔습니다.

 얼마 전 국세청은 직장인 평균 급여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40대 직장인 평균 급여액이 4708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국세청 발표대로라면 40대 직장인은 2332만원을 받는 20대 직장인에 비해 두 배 이상을 받고 있습니다. 50대 직장인 평균 급여액 4695만원보다도 많으니, 호시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337만6000여명에 이르는 대한민국 직장인 중 우리 세대를 직장의 꽃이라 부를 만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떠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통계는 통계일 뿐인가 봅니다.

 전체 직장인 중 0.7%인 9만2000명은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직장인도 3312명이나 됩니다. 그에 비하면 김형의 꿈은 소박하기만 합니다. ‘아무 일이라도 좋다’는 김형의 꿈은 꿈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겠지요. 5000원짜리 점심으로 허기를 달래다가 문득 가족과 며칠 동안 꿀맛 같은 여행을 그려보는 제 꿈 역시 단지 일상일 뿐입니다.

 김형.

 저는 요즘 직장인들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조차 못합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이 이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시절이 있었을까요.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 전화를 반갑게 받지 못하는, 연말 동기동창이 모여 술 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송년회조차 못 나가는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참 모집니다. 우리에게는 직장생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겪었던 IMF가 참 혹독했지요. 그때 많은 선배와 동료가 떠났고, 쓰러졌습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시련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올봄은 더 혹독하다고 합니다.

 김형.

 새해에는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김형뿐만 아니라 사오정 세대가 갖고 있는 일상 같은 꿈들이 하나 둘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태백’의 취직 꿈도, 내년 하반기에는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꿈도, 경제 위기 극복이 전자정보통신산업에서 올 것이라 믿는 업계의 꿈도, 과학이 우리의 미래라고 믿는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의 꿈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아름다운 것은 꿈꾸고 있는 동안에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오늘도 넥타이와 허리띠를 졸라맵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