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지금은 ‘믿음의 위기’다

[데스크라인]지금은 ‘믿음의 위기’다

 세상이 수다스럽다. 정보가 재력인 세상이지만 정보가 수다가 돼버리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번 내뱉은 말이 확대 재생산되고 마치 사실인 양 고착돼 버린다. 수다로 파장된 말들은 약간의 살을 덧붙여 주관이 된다. 뚜렷한 근거나 충분한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가 바닥을 치니 설득력을 더한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소규모 주식투자나 집 한 채에 의지하다가 졸지에 평가자산이 하락한 사람들은 수다가 풀어 놓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위기라는 단어에 가장 민감한 부류는 부자도 아니고, 빈민도 아닌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경기에 따라 중상층이 될 수도 있고 거리로 내몰릴 수 있는 개연성이 풍부한 집단이다. 수다의 근원지는 바로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중산층이다. 이들이 스스로 함정을 치고, 거기에 빠지는 ‘함정놀이’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경기는 심리다. 수다로 확산된 불안의 파장은 피해규모를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심리가 불안하면 모든 경기지표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 실제 경제위기가 미치는 여파보다 훨신 큰 피해를 준다. 사람이 많은 고층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직접 화재로 인한 피해보다는 그 불안과 공포에서 더 많은 피해를 낸다. 화재라는 공포와 불안이 고층에서 뛰어내리게 하고, 먼저 빠져나가려다 압사하는 수가 화재의 직접적인 인명피해보다 많다. 경기는 화재처럼 실제의 사건보다는 그로 인해 발생한 불안과 공포심으로 인한 결과가 더 크고 치명적일 수 있다.

 불안심리는 또 판단을 흐리게 한다. 정부의 비상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간 소비심리는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들도 긴축경영에 들어섰다. 어디서부터 ‘활성화’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위기에 놀란 가슴부터 진정해야 할 판이다. 돌이켜 보면 대공황 때도 기술개발은 이루어졌고 산업투자도 있었다. 줄이고, 졸라매고, 닫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불확실이 가장 위험한 적이기는 하지만 무작정 긴축으로 해결하려는 것 또한 무모하다. 위기라고 떠드는 수다에 현혹돼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조차 하지 못한다면 진짜 위기다.

 지금의 시기가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물경제나, 금융의 위기라기보다 전체에 퍼져 있는 ‘믿음의 위기’다. 현실을 직관하지 못하고 주위의 잡음에 휘둘리면서 불안한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위기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한바탕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경제위기로 출발해서 앞으로 뭘 해서 어떻게 먹고 살지에 대한 얘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정답없는 얘기들이다. 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충분히 단련됐으련만 얘기는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었다. 사람들이 퍼뜨린 수다에 약간의 당의를 입혀 아는 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또 어디선가 재생산될 것이고 탄탄한 논리인양 설득력을 가지고 퍼질 것이다. 중산층이 모여 또 하나 수다를 생산해 냈다.

 문제는 양산되는 수다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말이 없을 수 없고 말이 있으면 불안의 근원이 없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걸러내는 자정능력이다. 따라서 믿음의 위기시대에 이런 믿음 하나는 가져 볼 만하다. ‘끝이 없으면 위기가 아니다.’

이경우 신성장산업부장@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