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인이라면 누구나 들고 날 때의 느낌이 비슷하다. 들어갈 때는 대부분 의욕이 앞선다. 조직 개혁과 인적 쇄신을 벼른다. 중히 써야 할 사람, 챙길 사람도 생각나고 손볼 사람도 떠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금세 조직과 사람의 벽에 직면하게 된다. 초심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이때 결정된다.
나올 때는 대부분 우아함을 잃게 된다. 내가 없으면 이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까 하는 기분 좋은 착각에서부터 믿을 만한 측근 한 번 더 챙겨보자는 심리도 작동한다. 변화와 쇄신이 싫어지는 때기도 하다. 한번 더 해볼까 하는 유혹이 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국내 거대 통신기업 양대 수장이 한꺼번에 교체됐다. 통신시장의 특성상 흔치 않은 일이다. 이석채 KT 사장의 등장은 드라마틱하다. 최고의 엘리트로 승승장구하다 불명예로 옷을 벗었는가 하면 10여년간의 기나긴 법정 투쟁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다. KT에 입성하면서도 그렇다. 전임 사장의 ‘사연 많은’ 퇴진을 뒤로 하고 승선을 시도한 것도 그렇고 ‘정관 개정’이란 험로를 넘은 것도 그렇다.
정만원 SKT 사장은 차라리 예고 없는 드라마에 속한다. 전임 사장이 특별한 허물이 없는 상황에서 새 사령탑으로 긴급 투입된 것은 ‘이석채 등장’이라는 상황논리에 힘 입은 바 크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둘 다 관료 출신에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 사장은 경제수석과 재정경제원 차관, 정통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다. 정 사장 역시 동자부를 거쳐 SKT, SK주식회사, SK네트웍스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벌써부터 두 수장의 자존심 대결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미 1라운드가 시작된 느낌이다. 애초 예상과는 달리 KT가 합병 선언과 함께 곧바로 인가신청서를 제출해 버렸다. 속전속결식이다. SKT 역시 ‘시내망 분리’를 거둬들일 만큼 합병 ‘절대불가’라는 강수를 뒀다. 다분히 KT 신임 사장을 겨냥한 것이다. KT 또한 꿈쩍 않고 밀어붙이는 뚝심을 보였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전략적, 전술적 힘겨루기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전례 없는 명승부가 예견된다. 두 수장과 조직의 자존심을 건 경쟁이 통신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감도 기분 좋은 징조다.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쌓인다.
그런 의미에서 양대 수장에게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우선, 기업의 체질을 확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성장사업 하나쯤은 자신 있게 만들라는 것이다.
해외로 나가라는 것도 시대적 요청이다.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가는 것만이 지속성장의 요체요, 해법이다. 기간산업이라는 특성상 어렵기는 하지만 지분 투자든, 콘텐츠 제휴든 아니면 직접 진출이든 해외에서 승부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슴없이 쓴 얘기를 할 수 있는 스태프를 곁에 두라는 것이다. 예스맨에 둘러싸이다 보면 자칫 판단을 그르치거나 독선에 빠질 위험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인재풀을 폭넓게 가져가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둘 다 들어올 때의 의욕은 희석된 느낌이다. 조직 개편에 먼저 나선 SKT는 조직·사람이 대부분 그대로고, KT 역시 조직의 변화를 꾀하긴 했으나 사람의 변화가 뒤따르지 못했다.
벌써부터 조직과 사람의 벽에 맞닥뜨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초심이 흔들리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둘의 경쟁은 그런 의미에서 초심을 누가 더 오래 간직하는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컨버전스시대를 맞아 수장이 바뀐 KT, SKT의 진짜경쟁은, 그래서 지금부터다.
박승정 정보미디어부장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