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난 IMF 시절을 능가한다. 일부에서는 40·50대 가장의 실직 증가로 인한 가족 해체형 고용대란마저 예고하는 등 사회 문제로 커질 태세다.
과학기술계도 이런 분위기를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 과학기술 R&D의 중추기관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올해부터 경상비 10% 절감이 본격화되면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처지다. 이른바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출연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살아남기 전략도 다채롭다.
MB정부에서 지켜본 ‘출연연 서바이벌 전략’의 내면을 듣고 본 대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물론 일반론은 절대 아니다.
우선 예산 무조건 많이 확보하기. 돈이 곧 힘이라는 것은 과거 정부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예산철만 되면 아예 서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예산담당자도 늘었다. 휴일도 예외는 아니다. 예산권을 쥐고 있는 담당 사무관 얼굴 도장이라도 찍기 위해서다.
둘째, 인맥 잘 잡고 활용하기. 이는 인적자원개발(HRD)의 기본이지만 출연연에 적용될 때는 생존뿐만이 아니라 직위 보전의 효율적인 무기가 된다. 실제로 A 기관장은 지난해 살생부에 올랐으나 고교 동문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반대로 B기관에서는 기관장 공모에서 이른바 ‘줄’을 잘못 잡아 떨어졌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C기관은 기관장이 정치권과 연계된 퇴직 동문을 재입사시켜 구설수에 올라 있다.
셋째, 평가에서 무조건 1등하기. 기관장 1년 단위 평가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구태 가운데 하나다. 심지어 평가담당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예산 전결권까지 준 기관도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사전 평가위원에 대한 로비는 물론이고, 평가보고서 작성을 위한 용역발주, 전문가 초빙, 직원 합숙을 통한 문서작업 등 좋은 평가 등급을 받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
넷째, 과도한 사업 안 벌이기. 기관장 3년 임기의 딜레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기관장이 되면 1년간 업무파악으로 갈팡질팡하다 2년차에 좀 일을 추진하려 조직개편이다 인사다 챙기다 보면, 벌써 원장공모 한다고 시끄러워 일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관들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업무를 매끄럽게 유지, 수습하는 데 공들이기 일쑤다. 유럽처럼 10년짜리 기관장 임기 보장론이 나오는 이유다.
다섯째, 능력과 관계없이 ‘싫으면 네가 나가라’. 출연연의 자연감소 퇴직인원은 대개 한 해 평균 2∼5% 선이다. 이 인력이 대부분 대학이나 외국으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 실상 일할 분위기가 훼손될 때 가장 먼저 뛰쳐나가는 사람은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개 능력 있고 유능한 인물이 많다. 이때 가장 잘 활용되는 시스템이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이다.
여섯째 치열한 과제수주 경쟁은 No. 열심히 일한 ‘당신’이나, 과제가 없어져 바로 건너편 부서에서 ‘기생’해 월급받으나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다 인센티브도 없어졌으니 가능하면 무임승차하려 한다. 실제 정부부처에 찾아가 눈물로 설득하며 처절하게 예산을 따다 연구하는 인력이 많이 줄었다. 대충대충 연구과제만 중도탈락하지 않을 정도의 논문과 특허로 연명하면서 제자리를 지키자는 보신주의 팽배가 공무원에 이어 어느덧 출연연에도 자리 잡았다.
이게 2009년, 출연연이 사는 법이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