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3不사회’의 희망론

[데스크라인] ’3不사회’의 희망론

 입춘(立春)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들은 조만간 파릇한 싹을 틔워낼 것이다. 누가 뭐래도 봄은 희망의 계절이다. 요사이 희망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삶이 푸석해지는 와중에 위정자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0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SBS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에 출연해 “한국이 가장 먼저 경제를 회복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희망론’을 설파했다.

 세계 경기가 나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난국 타개의 해법이 제시될지 모를 대통령과의 대화였지만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시청률 면에선 참패했다. 시청률 4.9%로 같은 시간대,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12%, KBS 2TV ‘VJ특공대’의 16.3% 시청률에 비해 참패도 그런 참패가 없다.

 이틀 후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우리 사회가 불안, 불신, 불만이 가득 찬 ‘3불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불신이 정책 의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정부 정책 실행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해석도 내놨다. 이를 종합하면 3불 특히 정치적 불신이 만연하면서 순수한 정책 의도마저 불신하게 됐고, 결국 의욕을 가지고 난국을 타개해 내겠다는 대통령의 희망찬 메시지에조차 귀 기울이지 않게 됐다는 얘기가 아닐까.

 희망이란 뭘까. 희망은 당장 직면한 슬픔과 아픔, 시름을 덜어주는 진통제이자, 역경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엔도르핀을 만들어주는 효과 좋은 강장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반드시 필요한 명약인 셈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우리 국민은 예나 지금이나 희망의 끈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일제 강점기에도, 전쟁을 겪고 난 후에도,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도,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더 이상 희망을 갖지 말라고 해도 희망을 갖는 게 우리 민족이요, 국민이다. 위정자들은 국민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주문할 게 아니라 국민이 지금보다도 더 강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확신을 심어줘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어떤가. 험로 개척의 선두에 서야 할 경제수장 기획재정부 장관을 새로 지명하고도 국회 인사청문회조차 치르지 못했다. 어렵게 열린 임시국회도 용산참사 진상 조사, 언론관계법 개정 등에 막혀 경제 관련 입법 처리를 또다시 미룰 태세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들은 상대 당 헐뜯기와 책임 전가에 혈안이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남아 있던 희망도 날아갈 판이다.

 이러는 사이 경쟁국들은 경제위기 극복에 여야 할 것 없이 총력전을 펼친다. 심지어는 국제 규약을 어기더라도 자국 이익을 챙기겠다고 아우성이다. 미 의회가 경기부양 프로젝트에 미국산 제품만 쓰도록 한 ‘바이 아메리카’가 그것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미국발 금융위기가 심화한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간 16개 국가가 보호무역 조치를 도입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똘똘 뭉치고 있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입춘이 됐으니 집집엔 희망을 담은 입춘방(立春榜)이 나붙을 게다. 이 봄이 봄으로 느껴질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될지는 국민 스스로의 희망 정도가 아닌 위정자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

최정훈 국제부 차장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