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때 신문사 경제부장을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매일 신문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경제불황, 경기침체, 구조조정, 공적자금, 주가폭락, 달러 폭등, 유가 폭등, 위기설’ 등이다. 싸움과 전쟁, 갈등 등을 찾아다니는 습성을 가진 종족이 ‘기자’라지만, 점점 오그라드는 시장현실과 기업의 고통 앞에 기자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부 기자는 요즘 ‘잘못됐다’는 특종보다 ‘잘되고 있다’는 짤막한 단신기사에 더 눈길이 간다.
깡통 펀드를 갖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다. 노골적으로 어떤 펀드에 투자하면 좋으냐, 주식시장에 좋은 정보가 없느냐고 물어온다. ‘어떤 종목에 투자해야 하는가’라는 까다로운 질문도 있다. 신도 대답 못 할 질문이다. 세계 1위의 펀드국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주식 투자를 해본 적도 없어 투자에 젬병인 경제부장에겐 더욱 가혹한 질문이다.
언론사 경제부장이나 기자들은 요즘 우리 경제에 ‘희망’을 찾는 일에 매달린다. 매일 쏟아지는 경제 정보 중 ‘희망을 노래하는 경기 지표를 찾는 것’이 주요 일과다. 주식시장이나 경제연구소, 정부 통계 담당자들에게 경기 선행지수를 묻고, 그중 ‘희망의 노래’를 찾아 가공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쉽지 않다. 독자들은 당분간 암울한 노래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희망의 노래가 들려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장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타전해왔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얼마 전 바르셀로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불황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했다. LG텔레콤 시절, 3강 구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남용 LG전자 부회장이다. 그 시절 그는 ‘유효경쟁체제’ ‘통신산업 3강구도’라는 이슈를 만들어 시장을 흔들었다. 그룹의 변변한 지원 없이도 LG텔레콤의 수익구조를 변화시킨 주역이었다. 위기의 판을 만들고 그것을 기회로 활용한 사례였다.
LG전자도 경기불황 앞에서 힘들긴 마찬가지다. 소니와 도시바, 파나소닉 등 경쟁사도 같은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LG와 경쟁하던 일본 업체들은 ‘엔화 강세’라는 치명적 난제에 노출됐다. 남 부회장은 이것을 기회로 봤다. ‘불황은 하늘이 준 기회’라는 말은 LG전자 임직원을 끌어 안아 1∼2년 앞, 시장 판도 변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희망의 노래’였다.
이윤우 삼성 부회장은 지난 18일 기흥사업장에서 임직원들에게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경쟁사와 격차를 더 크게 벌려야 한다”며 시장 흐름을 빠르게 파악, 지배력을 넓혀가는 전략을 주문했다. 대량 생산을 하는 중국은 재고 부담으로, 일본은 엔화 강세로 리더십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을 간파한 CEO의 결정적 판단이다.
글로벌 기업에 불황은 싸움과도 같다. 누가 더 맷집이 좋은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난다. 그렇기에 몰리지 않은 선수가 유리하다. 두 회사는 IMF 때 맷집과 배짱을 키워놓았다. 기초 체력도 충분하다.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이들 국가대표선수는 불황의 시기에 희망을 노래한다. ‘희망의 노래’는 불황과 위험, 어려움을 극복하는 마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