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너나 잘하세요”

[데스크라인] “너나 잘하세요”

 지난 5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때 미국 최대 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의 주가가 1달러도 안 되는 이른바 ‘페니(동전) 주식’으로 거래됐다. 최근 국유화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식이 휴지조각이 돼 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주식 보유자들이 너도 나도 팔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한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 은행으로 자리 매김했던 시티로선 사상 초유의 ‘굴욕’을 경험한 셈이다.

 이날 유럽증시도 대폭락했다. 유럽중앙은행(EBC)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실망감에 유럽 주요국의 증시도 3∼5% 급락했다. 최근 유럽증시는 연일 폭락장을 연출한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가능성’에서 ‘현실’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중심에 유럽 최대 은행 HSBC가 있다. 지난 2일 HSBC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면서 시티·AIG에 이어 다음 위기의 진원지로 HSBC가 꼽힌다. 이날 HSBC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조달 계획과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발표 후 HSBC 홀딩스 주가는 2일 런던 증시와 3일 홍콩 증시에서 각각 19% 가까이 폭락했다.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대 낙폭이다.

 유럽발 금융위기를 보면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티끌을 비난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최근 외국 언론의 ‘한국 때리기’가 가관이다. 영국 언론이 때리는 시어머니라면, 홍콩 언론은 말리는 시누이 꼴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HSBC의 잘못된 자료를 인용해 올해 우리나라의 단기 외채비율(120%), 예대율(130%) 등을 근거로 한국이 이머징국가 가운데 외부 충격에 가장 취약하다는 보도로 ‘3월 위기설’에 일조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문회보도 지난 4일 ‘금융쓰나미 아시아 강타…파키스탄·한국 가장 위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때리기’를 거들고 나섰다.

 우리나라는 세계 12위권의 경제 강국이자 세계 6대 외환보유 국가다. 단기외채 비율(20%)이 높다고 지적하지만 1만%가 넘는 영국을 비롯해 독일·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도 영국과 미국 등지의 언론이 한국경제를 때리는 것엔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듯하다. 이들이 누구인가. 10여년 전 한국의 IMF 외환 위기를 틈타 막대한 부를 창출한 그들이 아닌가. 우리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혹독했던 IMF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나라다. 한때 ‘트리플 A’ 성적표를 받았던 시티·GM·도요타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이 줄줄이 정부에 손을 내밀지만 IT로 무장한 삼성과 LG전자 등 우리 대표 기업은 지금 이 순간 세계 정상을 노린다. 가능성은 작지만 시티와 HSBC가 조기에 위기를 극복한다면 글로벌 경제는 그만큼 빨리 회복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과 정부의 역할만큼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외국 언론의 충고와 조언은 고맙다. 그런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나 잘하세요.” 엊그제 저녁, 만 세 살도 안 된 작은 딸아이 입에서 문득 나온 이 말을 듣고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해외 언론에 딱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김종윤 국제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