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인사, 경력관리보다 전문성

[데스크라인] 인사, 경력관리보다 전문성

 업무상 정부 산하기관 관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로 ‘소관 부처 공무원들의 잦은 자리 이동’을 꼽는다. 담당 과장이나 사무관이 바뀔 때마다 업무보고를 할거면 보니 아예 업무보고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야 할 지경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업무보고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본연의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당연하다. 또 담당 공무원도 1년에 한 번꼴로 자리를 옮기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과 전문성이 낮아지게 마련이다.

 얼마 전에 만난 정부 녹색성장 정책 업무를 지원하는 산하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자리에 4년째 있지만 주무과장만 벌써 네 명째”라며 “잦은 인사 이동이 개인의 경력 관리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업무 연속성이나 전문성엔 마이너스 효과”라고 지적했다. 다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한 분야에서 근무한 지 1년 가까워지면 슬슬 다음에 옮겨갈 자리를 생각하는 공무원도 있다. 전문성보다는 이런저런 분야를 두루 경험함으로써 경력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실제로 이 같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정부 부문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인사제도 개선’이라는 보고서다. 보고서의 핵심은 잦은 인사 이동으로 인해 공무원의 전문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정부 효율성 순위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공무원이 한 자리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고작 1년 남짓이다. 4∼5급 중 1년을 못 채우고 다른 자리로 이동하는 비율이 42%에 이르고 고위 공무원으로 갈수록 그 비율은 높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의 고위 공직자 평균 재임기간이 3∼5년인 데 비해 턱없이 짧다. 상대적으로 선진국 정부가 자국의 국가경쟁력 제고에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인사 이동으로 인한 업무 파악에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협력사업을 하는 공무원이 새로 부임해 국제회의 석상 등에서 상대 국가 업무 파트너에게 명함을 건네기라도 하면 “다음 인사는 언제며, 다음엔 누가 올 것인지”를 묻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다음 국제회의 때면 또 다른 사람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아예 새로 올 사람과 논의하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일지도 모르지만 국가 간 협력사업의 추진속도가 더뎌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공무원의 잦은 자리 이동은 계급제와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한 순환보직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다. 공무원의 순환보직 시스템은 한 직급 내에서도 암묵적으로 상위 보직과 하위보직이 있어, 하위보직에서 상위보직으로 단계적으로 이동한 뒤 승진하고 다시 같은 직급에서 보직 이동을 거쳐 승진하는 식의 이른바 ‘Z’자 형태를 띤다. 따라서 한 사람이 이동하면 연쇄반응을 일으켜 인사 폭이 커지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성을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해외 파견근무 교대가 이뤄지는 2월과 8월, 그리고 개각 등으로 인한 대폭인사가 있을 때면 관가는 물론이고 산하기관까지도 일손을 놓기 일쑤다. 정부조직이 아무리 시스템적으로 움직인다 해도 잦은 인사로 인한 잦은 허니문 기간은 줄여야 할 국가적 낭비다. 공무원의 화려한 경력관리도 좋지만 전문성을 고려한 진득한 인사가 아쉽다.

 주문정 그린오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