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100년 가는 기업을 기다리며

[데스크라인] 100년 가는 기업을 기다리며

 지난달 29일 각 신문의 부고란에 우리의 옛기억을 되살리는 인물의 사망소식이 실렸다. 고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이다. 한때 재계 순위 7위의 그룹을 지배하다 5공 정권에 밉보여 그룹 해체를 겪은 비운의 기업인이다.

 여의도를 넘어 수도 서울을 상징하며 전 국민이 한번쯤은 가봤을 63빌딩을 건설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그리고 국회 청문회에서 머슴론으로 스타(?)가 됐던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두 사람은 이제 세인의 기억 속에 잊혀졌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문어발식 기업 확장으로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은행 돈을 빌려 기업의 인수 합병에 나선 것도 똑같다. 한때 수만명의 직원을 호령하며 제왕적 권위를 누렸던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업이 사라지니 당연히 직원도 없다.

 민병도. 경춘관광 사장이던 그는 모래와 땅콩밭이던 무인도 남이섬을 사들여 그곳에 나무를 가꾸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두고 무모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남이섬은 자연생태 문화 복합 콘텐츠 단지로 1년에 150만명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됐다. 한상경. 대학교수였던 그는 아무도 관심이 없던 경기도 가평 축령산 자락을 사들여 10만평 용지에 17개의 테마공원을 조성해 희귀 멸종식물의 보고로 만들었다. 그곳이 아침고요수목원이다. 이 수목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는 수도권의 생태 학습장으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창호. 바둑기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1960년대 외도에 우연히 낚시하러 갔다가 머문 뒤 이 섬에 매료돼 전 재산을 털어 섬을 통째로 사들였다. 부부가 평생 나무를 심고 가꿔 다도해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었다. 특히 외도는 열대식물의 보고로 관광수입만 연간 수십억원에 이른다.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주변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소신을 갖고 묵묵히 혼자의 길을 갔다. 자연을 이용한 환경친화적인 사업을 펼쳤다. 이들은 나무가 거짓말을 안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뿌린 씨앗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관광지가 됐다.

 앞의 세 사람의 기업 규모는 민병도, 한상경, 이창호씨 사업을 모두 합한 것보다 수백 배 컸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뒤에 언급한 세 사람의 것뿐이다. 이들은 몸으로 자연과 싸우며 정성으로 오늘을 일구었다. 그러니 오래갈 수밖에 없다.

 기업이 3대를 이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2세나 3세 경영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하지만 민병도, 한상경, 이창호씨가 만든 ‘자연기업’은 후손들이 잘만 가꾸어 나간다면 영원할 수 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나무는 심고 가꾸는 대로 보답한다고 한다. 며칠 후면 식목일이다. 지금 경제가 말이 아니다. 글로벌 경영위기로 청년실업과 구조조정이 심각하다. 식목일을 앞두고 민병도, 한상경, 이창호씨가 생각나는 것은 우리 기업인들이 다시 한 번 멀리 내다보며 이 난국을 극복해 기업이 앞으로 100년, 200년이 가도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홍승모 생활산업부장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