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한국의 첫 우주인은‥

[데스크라인] 한국의 첫 우주인은‥

 우주인 이소연 박사가 우주상공 350㎞에 자리 잡은 우주정거장 ‘미르’를 다녀온 지 지난 8일로 만 1년이 됐다.

 지난 2008년 4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이소연 박사를 싣고 우주로 떠나던 발사체 소유스 TMA-12의 하얀 불꽃,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소연 박사 어머니가 발사현장에서 모정에 못 이겨 ‘눈물 기도’를 하던 일과 발사대가 놓인 바이코누르의 인상 깊은 풍경, 현지인의 텃새로 인터뷰가 불발돼 발을 동동 구르던 일 등 카자흐스탄에서는 채 이틀 머무르지도 않았지만 참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귀환과정도 모두의 애를 태우게 했다. 마치 불시착하듯 종 모양의 귀환모듈이 목표지점을 한참 벗어나 내동댕이치듯 떨어지는 바람에 이소연 박사는 부상을 입어 장기간 치료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지구로 귀환한 지 한 달이 다 돼서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성격이 쾌활해서인지 지난 1년간 이소연 박사가 강연에 나선 횟수는 무려 98회고, 언론 인터뷰나 방송출연 등은 모두 89회였다. 따져 보면 하루 평균 한두 건의 강연이나 언론활동을 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다.

 지난해 제기됐던 논란 중의 하나가 한국 첫 우주인의 우주여행객론이었다. 과학자로 다녀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정부에선 부랴부랴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로 최종 정리했지만 지금와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실험실에 있는 이 박사의 모습을 본다면 어느 누구도 ‘과학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우주인처럼 인력 풀을 만들어 2차, 3차 우주에 계속 보낸다면 논란 자체가 우습게 되는 것이다. 실상 우주인 관리지침에도 이소연 박사가 1주일에 이틀은 연구업무를 하도록 돼 있다.

 당시의 우주 실험 내용과 질의 문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공군 측에서 밝혔던 8∼9년 뒤 우주 비행사 육성 사업에서라도 같은 오류를 범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시 우주에서의 실험 일정을 보고 동료 러시아 우주인도 놀랐다고 이 박사는 나중에 술회했다. 자그마치 18가지나 되는 실험을 8일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말이 안 된다. 일부 가능한 과제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기초 수준의 테스트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 박사의 잘못이 아니다. 마치 주위의 눈총과 비판을 수십 가지 과학실험으로 덮고자 했던 정부 정책 당국자의 책임이다.

 어쨌거나 이 소연 박사는 한국의 첫 우주인이다. 그 역할과 위상은 어느 누가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 박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1년간 이 박사가 꺼내 놓은 강연 레퍼토리는 복사판이 돼 가고 있다. 새로운 것이 없으면 질리듯 시간이 흐르고 또다른 우주인(우주 비행사)이 탄생한다면 자연 뒷전에 밀리거나 잊혀질 것이다. 이를 이겨내려면 스스로 연예인 같은 ‘스타’라는 착각에 빠져 있기보다는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한국의 첫 우주인은 섬이 너무 멀어서, 강연료가 적어서 못가겠다고 버티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코흘리개의 손도 가만히 잡아주며 사탕 하나를 쥐어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를 국민이 바라기 때문이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