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멕시코발 돼지독감(SI)은 세계가 얼마나 평평해졌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발생하자마자 미국과 유럽, 남미로 퍼졌다. 멀리 떨어져 있다지만, 아시아에도 상륙할 것이다. 지난 13일에 발병했으니, 불과 보름 만에 세계로 확산됐다. 누구나 항공편을 이용해 쉽게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다. 전염병도 이렇게 글로벌화했다. 글로벌 전염병의 확산 속도는 갈수록 빨라진다. 2003년 사스(SARS)나 2005년 조류독감(AI)보다 SI의 확산이 빠르다. AI보다 인체 감염 가능성이 큰 SI의 특성을 감안하면 100메가급 속도로 퍼질지 모른다.
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퍼지는 게 공포다. 공포는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한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지구촌에 번졌다. 실감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스크를 쓴 멕시코시티 시민과, ‘금겹살’이던 돼지고기 소비를 뚝 끊은 서울 시민에게 다가온 공포 자체엔 차이가 없다. SI가 발생하자마자 여행산업과 유통업이 위축됐다. SARS와 AI의 학습효과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촉발된 실물경제 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SI가 세계로 퍼지면 경제적 손실이 3조∼4조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경기침체를 더욱 부추기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더 심각할 수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확실히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
백신이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변종이 나온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백신 기술이 발전했지만, 동시에 변종도 끊임없이 등장했다. 새 변종은 특히 면역력이 없는 이에게 치명적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을 보면 세균은 농경과 야생동물의 가축화와 함께 인류에게 침투했다. 오랜 세월 농경을 해온 유라시안은 병원균에 적응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잉카제국 사람들은 불과 수백명의 스페인 군대가 퍼뜨린 천연두 변종 세균에 의해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사람의 면역력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깨끗한 환경에서 산 잉카인들은 불행히도 면역력이 없었다. 몸에 세균이 득실거린 유라시아인은 면역력이 강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IT 기업도 다를 바 없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미국과 유럽, 일본의 간판 IT기업들은 1분기에 실적 악화에 휘청거렸다. 반면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우리 대표 기업은 깜짝 실적을 이뤄냈다. 환율과 경비 절감 덕분이라는 분석이지만 외환 위기 이후 오랫동안 면역력을 키워온 것도 작용했다. 지금도 강도 높은 혁신으로 면역력을 높인다. 이 면역력이 2분기와 하반기까지 작용할지 미지수나, 버틸 수 있겠다는 희망은 있다.
평평한 세계는 누구에게나 문호를 열어놓는다. 그렇지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멀쩡한 글로벌 기업도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오라클에 넘어가고, 델이 HP에 PC시장 1위를 내줄 줄 상상이나 했는가. 우리 IT 기업이여, 조금 더 힘을 내라. 단가 하락과 같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되지만 살아남기 위한 면역의 과정일 수 있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