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을 석방하겠습니다. 일로부터, 정적으로부터, 비판으로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단 일동”
2007년 12월 말. 청와대 영빈관에서 출입기자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송년 만찬이 있었다. 기자단은 떠나갈 노무현 대통령에게 ‘석방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재임기간 내내 언론과 대립각을 세웠던 대통령에게 기자단은 언론의 칼날 아래에서 외롭고 고독했을 대통령을 위해 ‘석방’이라는 화해 카드를 꺼냈다. 일과 정적, 비판으로부터의 석방이자, 자연인 노무현으로 ‘온전히’ 돌아가기를 바라는 기자들의 진정성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첫마디는 집권 내내 참모들에게 들었을 ‘말조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송년회) 준비를 하며 두 가지 부탁을 받았다”며 ‘주인 행세 하지 마라’ ‘기사거리를 주지 마라’는 당부가 있었다고 했다. 웃고 있지만, 그의 눈은 벌써 울고 있었다.
그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했다. “기대한 대통령마저 말년에 지탄의 대상이 됐다”면서 칭송받는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을 서운해했다. 취임 초기 ‘성공한 대통령이 되십시오’라는 인사를 받았는데, 이 화두를 풀기 전에 사람들이 ‘역사에서 평가받을 겁니다’라고 위로하더라는 말도 했다. 성공한 대통령 모델로 ‘섬기는 대통령’을 그리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이 일을 하기에 지지율이 너무 낮았다. 그게 노무현의 딜레마였다.
그는 “5년간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했기에 부끄럽지 않다”며, “자부심도 있고, 떳떳한 대통령이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경제는 “안전운행을 했다” “(당시 경제성장률) 4.5% 속도가 벌을 받아야 할 속도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하던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난파선에서, 저는 폭풍과 비슷한 바다를 헤쳐 왔다”고 회고했다.
퇴임 이후 자신이 있을 곳을 ‘시민의 자리’라고 했다. 그는 “다시 싸우고 하는 자리는 제자리가 아니다. (다만) 그 자리가 어느 자리든지 영원한 화두는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아마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 노무현’을 그렸던 것 같다.
2009년 4월 30일 시민의 자리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면목 없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행 의전 버스에 오르는 그의 눈에서 기자는 2007년 겨울 청와대에서 “마음이 짠하다”며 젖어들던 노무현의 눈물을 보았다. 기자와 일로부터는 석방됐지만, 정적과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가 보다. ‘석방’한 날부터 그는 내내 구설수에 시달렸다.
국정 한가운데 평등이라는, 균형이라는, 분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대통령, ‘나’보다는 ‘저’를 내세우며 자신을 낮추려 했던 대통령 노무현은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역사의 현장에 있던 기자들만이라도 대통령의 철학을 이해해주기 바란다던 그 사람은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청사로 사라졌다. 4월은 시민 노무현과 국민 모두에게 잔인했다.
2007년 겨울, 그는 자신의 탄핵사태보다 열린우리당 파당과 개혁 의제 실종이 재임 기간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고통에 비하지 못한다. 국민은 검찰청사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가장 기억하기 싫은 모습, 가슴 아픈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보’ 노무현 때문에.
김상용경제교육부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