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심장에 남는 사람

[데스크라인] 심장에 남는 사람

 중국 출장길에 꼭 북한식당에 들른다. 입맛도 입맛이려니와 동족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묻어나서다. 상하이 ‘청류관’으로 기억된다. 현대식으로 꾸며진 실내에 옹색한 무대가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식당이다. 이곳에서 북한 처녀의 노래를 들었다. 북한 노래 특유의 가늘고 높은 톤에서 새어 나오는 애절한 노래였다. 제목은 ‘심장에 남는 사람’이었다.

 가사를 보면 뭉클함이 절로 배어나온다.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혁명가요 같기도 하고 애정가요 가사 같기도 하다. 어디 붙여도 그 뜻이 엿가락처럼 착착 붙는다. 일인독재 체제라는 북한의 실상을 생각하면 노래를 부르는 이의 감정이 새록새록 스며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이후 이 노래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줄 지어선 조문객 행렬을 보면서, 또 애통함에 절규하는 눈물을 보면서 많은 이에게 그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5년간 그의 통치 업적은 심장에 남을 것이 많지 않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는 노력은 인정하지만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0%대 지지율로 어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 많고 눈물 많은 보통사람이 정치에 입문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실수를 인정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은 지금껏 경험해 본적이 없는 새로운 상이었다. 탈권위의 새로운 대통령이다. 정치의 술수를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순수’ 대통령상으로 각인됐다. 퇴임 후 비리에 연루돼 지탄을 받을 때 그는 결국 자살이라는 ‘순수와 자존심의 결론’을 택했다. 언제부터인가 고착화된 역대 대통령 퇴임 후 검찰수사의 오욕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기대할 수 없었던 ‘한국 정치의 자존심’을 세운 그였다.

 이제 비극적인 종말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남은 자의 몫이다. 음모론이 난무하고 특정집단에 화살이 돌아가는 구태가 재연돼서는 그가 죽음을 택한 의미가 없다. 정치판에서 국면전환의 도구로, 정쟁의 사건으로 활용된다면 그의 단호한 결정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독립 이후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하는 한국정치사에서 진일보하는 큰 걸음을 막는 꼴이 된다. 엄숙한 ‘추모 정국’을 ‘정치인이 조용하니 나라가 조용하다’는 비아냥으로 격하시킬 것인지 아닌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북핵의 위협으로 안보에 이상 기류가 생기고 수출은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다. 실업은 줄지 않고 경제는 ‘깔딱고개’ 연속이다. 추모 정국 이후 다시 발 빠르게 정국을 안정시켜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다. 이때 말 많은 이들이 다시 ‘말의 화(禍)’를 쏟아낸다면 고귀한 죽음의 의미도, 정국 안정도 물거품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무엇으로 추억할 것인지는 개인 판단이지만 이제 그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됐다. 노랫말처럼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가 되어 누구에게는 민주주의의 화신으로, 소탈한 옆집 아저씨로, 눈물 많은 촌부로도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 더 기억할 것은 옛 전철을 밟지 말고 ‘잘하라’는 남기지 못한 유언일 게다. 순수하게 국민을 사랑했던 인간 고 노무현이 끝내 하지 못하고 간 말이다.

이경우부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