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나오고도 연봉 수백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넘쳐나는 곳이 있다. 바로 지성의 요람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학이다. 그 수는 무려 5만5000명에 달한다. 혹자는 7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그들은 비정규 교수로 불린다. ‘보따리 장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비정규 교수란 시간강사를 비롯해 외래·겸임·객원·대우·강의전담·연구교수 등 한 학기 또는 일정 기간 동안 대학에 임용돼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 이른바 임시직 강사를 말한다.
그들은 2년 전부터 시행 중인 비정규직 보호법의 보호 대상에도 속하지 못한다. ‘가방 끈’이 남들보다 길어서다. 2년이 지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의 규정을 담은 기간제법에는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제4조 1항)’가 예외 조항으로 달려 있다. 입법 취지와는 달리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비정규직 해고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노출돼 개선이 시급한 법이지만 여기서도 시간강사들은 소외됐다.
정부가 추산하는 2년 이상된 비정규직 근로자는 70만명 수준이다. 그 수에 비하면 시간강사 비중은 너무 크다. 대학교육협의회가 작성한 통계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반대학의 비전임 교원의 비율이 61.1%에 달한다. 전문대학은 그 비율이 72.6%로 더 높다. 서울과 수도권의 시간강사 평균 연봉이 487만5000원이란 통계가 있다. 전국 평균을 내도 1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십수년간 학문에 매진했던 그들이다. 근로자보다 다소 품위가 있어 보이는 교수란 호칭이 붙어 있지만 말이 교수일 뿐 처우는 일반 근로자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의 대학에선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2 창학이란 이름으로 모은 수백억원대의 기금과 성금을 학교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지만 요란한 공사터의 가장자리에는 비정규 교수들이 비켜 서 있다. 그들은 최고 지성의 요람에서 인재양성을 담당한다. 미래의 꿈나무를 키워 내는 일이다. 전임교수들이 꺼리는 교양수업은 그들이 전담한다.
동량지재를 양성하는 일이 초·중·고교 교사나 대학의 전임 교수와 다를 바 없지만 처우는 천양지차다.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계약서에 의해서가 아닌 구두로 채용을 통보받는 파리 목숨의 임시 고용직일 뿐이다. 기본 4대 보험 혜택이나 자신의 연구실은 꿈도 꿀 수 없고, 강의실이나 연구실이 아닌 버스나 지하철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딸린 식솔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어디가서 내놓을 만한 명함조차 가질 수 없는 그들이다.
지리학적으로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나라의 발전을 사람에 의존해왔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 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뿐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난다’는 의미의 ‘진시명사출고도아(眞是名師出高徒阿)’란 말이 있다. 순자 권학편의 청출어람(靑出於藍) 사례로 흔히 언급되는 북위 시대의 이밀(李謐)도 공번(孔燔)과 같은 좋은 스승을 만나 청람지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을 지성의 요람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초·중·고 12년간이 공부의 끝이 될 수는 없다. 학문을 체계화하고 심화하는 대학은 그래서 지성의 쉼터가 아닌 요람이다. 그만큼 학문과 연구의 중심인 교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연봉 수백만원짜리 최고 학력의 비정규 근로자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다.
최정훈 국제부 차장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