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뒤바뀐 갑과 을

[데스크라인] 뒤바뀐 갑과 을

 신유목민 사회의 필수품, 휴대폰의 진화가 무섭다. 자고 나면 새로운 휴대폰이 등장한다. 소비자는 휴대폰이 없으면 외출이 겁날 정도다. 지금 세상은 휴대폰이 지배한다. 그 속으로 온갖 감정이 빨려 들어가고 또 튀어나온다.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거나 교체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터치폰을 구입하려고 하는데 너무 가격이 높아서요.”

 “요금제로 묶으시면 거의 공짜예요. 얼마까지 해드릴까요? 고객님이 원하시는 선까지 맞춰 드릴게요.”

 휴대폰 매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대화 내용이다.

 최근 터치폰을 구입한 한 소비자에게서 하소연 메일이 한 통 왔다.

 사연은 이렇다. 터치폰을 구입하고 8일이 지났는데 갑자기 켜지지가 않았다. 그는 구입한 매장을 찾아 교체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구입처에서 ‘서비스센터에 방문해 제품교환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반나절을 서비스센터와 구매처를 오가며 어렵게 새로운 제품으로 교환했다. 비싸게 주고 구입한 휴대폰이 불량인 것도 서러운데 반나절을 허비한 것에 더 분통이 터졌다.

 구매처의 오류다.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소비자가 휴대폰을 구입한 지 14일 이내에 제품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무조건 구매처에서 교환·환불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이동통신사업자 약관에도 서비스에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교환을 해주도록 돼 있다.

 문제는 대리점과 판매점의 계약관계 때문이다. 그가 휴대폰을 구입한 곳은 판매점이다.

 휴대폰 유통망은 크게 대리점과 판매점으로 나뉜다. 대리점은 이동통신사업자 본사와 계약해 운영되지만 판매점은 대리점에서 운영하는 또 하나의 유통망이다. 따라서 판매점은 고객관리가 중요치 않다. 오직 판매 이윤에만 몰두한다.

 상황이 이러니 판매점은 휴대폰 판매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휴대폰 구매에서 ‘갑’인 고객이 방문하면 어떻게든 제품을 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깎아주고 액세서리를 끼워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판매 이후에는 180도 변한다. 온갖 정성은 오간 데 없다. 이제는 판매점이 ‘갑’이다. 불량 휴대폰을 구입한 고객만 답답할 뿐이지 판매점은 아쉬울 것이 없다. 그래서 고객이 포기할 때까지 최대한 제품교환 시간을 지연한다. 몽니를 넘어 행패로까지 느껴진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미꾸라지가 한 마리가 흙탕물을 일으켜 온 웅덩이를 흐려 놓는 꼴이다.

 이통사업자는 고객불만이 자사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대리점에 인증마크를 부여했다. 하지만 판매점은 대리점처럼 보이기 위해 인테리어를 동일하게 따라한다. 심지어 직원 유니폼까지 비슷하게 입히고 있다. 전국에 이동통신 3사의 대리점은 3500개인 데 비해 판매점은 2만개가 넘는다. 소비자가 이를 구분하기란 ‘장님이 문고리를 잡는 것’보다 더 어려울 듯싶다.

 심리학 이론 중 ‘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사람들은 나머지 유리창도 깨뜨리거나 심지어 건물에 불을 질러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이론이다. 한 번 마음이 떠난 고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판매점의 횡포를 이동통신사업자가 살펴야 한다. 작은 것에 집착해 스스로 작아져서는 곤란하다. 

김동석 생활산업부 차장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