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서프라이즈 삼성! 그 뒤엔…

[데스크라인] 서프라이즈 삼성! 그 뒤엔…

 ‘서프라이즈!’

 삼성전자의 실적이 놀랍다. 한국경제의 바로미터인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은 아직도 바닥을 헤메는 글로벌기업과 달리 회복을 넘어 기록에 도전한다. ‘삼성의 실적으로 세계 경기가 고개를 든다’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휴대폰은 사상 최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LED TV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위의 눈높이를 저버리지 않은 삼성의 저력이 그저 ‘서프라이즈’할 뿐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지휘력은 대단하다. 반도체·LCD를 담당하는 DS부문은 1분기 적자를 탈피해 흑자전환했다. 세계 반도체업계가 아직도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삼성만 유독 흑자의 반열에서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휴대폰과 TV 등을 맡고 있는 DMC부문은 1분기에 이어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극한상황을 헤쳐나가는 이윤우 부회장(DS)과 최지성 사장(DMC), 두 수장의 면모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짜 ‘서프라이즈’는 따로 있다. 두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이다. 반도체와 LCD사업이 3%인 반면에 휴대폰과 TV는 무려 9%나 된다. 영업이익률의 대명사로 불리던 삼성 반도체의 신화가 무색하다. 그렇다고 삼성 반도체가 시장이나 기술개발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삼성을 따라올 기업은 아직 없다. 살벌한 ‘치킨게임’의 승자로, 기술과 양산 모두 부동의 세계 1위다.

 반도체, LCD와 같은 부품소재 사업은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업이다. 당연히 고부가가치 업종이고 이익률에선 세트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부품소재기업의 영업이익률이 세트사업보다 월등하다. 물론 세계 반도체시장 사이클의 침체국면이 제일 큰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승자면서, 기술의 승자인 삼성반도체가 세트에 비해 세 배 이상의 ‘비교 열위’에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사업부문의 운명이 역(逆)으로 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반도체 신화’를 능가하는 ‘세트의 약진’의 주인공은 바로 판가(납품가)인하다. 사업은 싸고 질 좋은 제품을 공급받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 당연하다. 설사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 내에서 “우리가 남이가?”로 묻는다면, 답은 “우리는 남이다”다. 끈임없는 판가인하 압력에 같은 ‘삼성’字를 달고도 한쪽은 ‘갑’으로, 또 한쪽은 ‘을’로 살 수밖에 없다. ‘너무 각박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에 ‘같은 값, 같은 품질이면 삼성 것을 쓴다’고 답한다.

 조직 내 판가 경쟁구도를 유발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두고 평가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에서의 최근 변화는 분명 새로운 움직임의 전조다. ‘기술의 삼성’에서 ‘마케팅의 삼성’으로 변하는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고의 마케터’ 등극 이후 변화한 삼성전자의 모습이다.

 “여러분, 올 한 해 잘 버티십시오.” 올 초 삼성전자가 어려운 경기상황을 예측하고 협력사들에 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혹독한 판가인하 압력을 잘 버티시오’라는 뜻으로 들린다. 하물며 같은 조직 내에도 가혹한 경쟁이 존재하는데, 중소 부품업체에 이 말은 몸서리를 치게 할 협박으로 들릴 게다. 세트업체에 결코 ‘갑’일 수 없는 중소 부품소재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상생을 강조한 삼성이 올해는 아무래도 경쟁을 택한 것 같다.

  이경우부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