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골목길 신호등과 방통심의위

 신호등이 있는 골목길 횡단보도 앞에 설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 빨간불이 켜졌으니 일단 멈췄지만 다니는 차가 없다. 가로질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다만, 옆에 선 아이 눈치가 보인다. 질서 교육을 시키지 못할망정 “왜 아빠는 신호를 무시해”란 지청구를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녹색불로 바뀔 때까지 서 있지만 기껏해야 몇 미터도 안 되는 길 앞에 서 있으니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길에 웬 신호등이람’ 짜증도 난다.

사실 골목길에 신호등이 필요 없다. 괜한 예산, 시간 낭비다. 자동차 운전자가 횡당보도 앞 ‘일단 정지’만 잘 지키면 신호등 없이 사람도, 차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일단 정지’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얼마나 많으면 이랬을까 이해도 되지만 근원 처방은 아니다. 값비싼 신호등을 달 예산으로 차라리 운전자 교육이나 제대로 시키면 좋겠다. 횡단보도 앞에 일단 정지를 안 했다간 ‘센’ 범칙금으로 큰 코 다친다는 인식을 심어주든지….

지난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뀌었다. 방통심의위는 방송과 정보통신의 공공성과 공정성, 건전한 이용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생긴 기구다. 많은 일을 하지만 핵심은 심의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송 심의는 늘 사회적 논란을 빚는다. 최근엔 인터넷 심의도 논란거리다. 정권 교체 때마다 미디어 장악 논란을 빚는 우리나라에선 방통심의위가 아무리 공정하게 심의해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심의위원을 여야 추천 인사들로 구성한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특정 정치 세력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나, 이는 곧 이 기구가 얼마나 정치성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지 일깨워준다. 이번 위원장 교체를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방통심의위를 정치 압력 없는 독립 기구로 만들자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이진강 방통심의위원장의 취임사 첫마디도 ‘명실상부한 독립기관으로 자리매김’이었다. 약속을 잘 지키면 좋겠지만, 미디어 권력을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는 상황에선 이루기 힘든 목표다.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이를 감시할 기구는 필요하다. 그러나 꼭 방통심의위여야 할 필요는 없다. 자율 심의를 강화하고, 시청자단체 등 민간 감시를 더 활성화하는 방법이 있다. 제재는 물론 민간의 몫이 아니다. 방통심의위가 존재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여기다. 내용을 일일이 심의하는 것보다 불거진 갈등을 조정하고,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하는 역할이다. 그래도 안되면 당사자간 소송으로 가면 그만이다. 만약, 한 방송사가 방통심의위가 구체적으로 정한 심의가이드라인을 어기면서까지 특정 정치세력을 비호하거나 선정적인 방송을 일삼는다고 하자. 재허가와 같은 행정 조치는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방통심의위의 독립성 제고에 앞서 사회적 합의롤 거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행정 조치나 소송으로 인해 미디어 사업 자체가 힘든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이제 발상을 달리 할 때다. 방통심의위는 정말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그 목적과 역할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따져보자. 골목길 신호등은 운전자나 보행자의 신호 과신과 맞물려 자칫 큰 인명 사고를 부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방통심의위의 심의는 애초 의도와 달리 사회적 갈등만 더 부채질할 수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