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남자의 눈물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남자의 자격­눈물편)에서 멀쩡한 남자 여럿이 모여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 장면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슬픈 영화나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 남자를 보고 ‘찌질이’라고 놀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을 나타냈다.

 흔히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이렇게 세 번 운다고 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자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몇 년 전 영화 ‘화려한 휴가’를 혼자서 봤다. 영화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분노의 눈물이었다. 한동안 눈물이 멈췄다. 그런데 그가 나를 울렸다. 몇 해 전 인터넷으로 그가 눈물 흘리던 모습을 보고 함께 울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가 나를 또 울렸다. 미안한 마음에 그 앞에 엎드려 울 수가 없다. 부끄러운 마음에 눈물도 숨어 삼켰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남자의 눈물이 있다. 아끼던 후배 정치인을 허무하게 보내고 오열하던 그의 모습에서 누이를 잃고 서럽게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걱정이 앞섰다. 연세도 많은데 자식처럼 아끼던 사람을 잃었으니, 그것도 지켜주지 못하고 그렇게 보냈다는 자책에 가슴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그의 걱강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보람도 없이 사흘 만에 그는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조금 더 버텨줄 것이라 믿었는데 너무도 안타까웠다. 고난의 길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투혼의 생애는 이제 전설이 됐다. 그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산증인이었다. 한반도 역사에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실현해보지 못했던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는 데 그는 마치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살았다. 그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상반됐으며, 비판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그의 노력이 세계의 근심거리를 안심시키는 데 기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실천한 지도자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마음으로 대했던 그는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을 때 분노했다.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생전에 할 일을 다했다. 나머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보내면서 이번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위해 싸웠고,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던 그의 삶은 ‘눈물’이 아니라 ‘희망’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통령의 기부가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자택과 일부 재산을 뺀 재산 331억원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마침내 지킨 셈이다. 대통령의 전 재산 기부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애써 모은 재산을 청소년 장학과 복지사업 지원을 위해 내놓은 일은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수백억원의 재산 헌납이 아니다. 서민을 위해 흘리는 한 줄기 눈물이면 족하다. 백성을 가엾게 여겨 한글을 창제했던 세종대왕처럼 국민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면 그것으로 족하다. 국민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그가 벌써 그립다.

 김종윤 국제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