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임원이 된다는 것은…

[데스크라인] 임원이 된다는 것은…

 얼마 전 지도교수를 비롯한 대학동기들과 오랜만에 술잔을 나눴다. 참석자 중에 대기업 임원과 수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CEO도 있었다. 대기업 임원인 친구는 그래도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CEO인 친구들은 경기 영향인 듯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회사에 임원들 있지 않니? 그들에게 업무를 넘기고 좀 쉬지 그래.” 힘들어하는 J 사장에게 건넨 덕담이다. 반응은 싸늘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주어진 업무만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머쓱해졌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부사장, 전무, 상무 등의 타이틀을 단 이들을 임원이라 부른다.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핵심 인재들이다. ‘넘버2’ ‘넘버3’라고 부르는 것도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취재현장에서 사장들을 만나면 이러한 통념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중견 기업 사장 가운데 상당수는 임원들을 기업의 핵심 인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임원 20여명을 두고 노트북PC를 제조·판매하는 H 사장의 말이다. “핵심은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인재지요. 전체 임원의 30%만 있으면 회사는 잘 굴러갑니다.”

 H 사장은 믿지도 않고 능력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왜 중용할까. 이유는 간단했다. 선친 때부터 20여년간 고생한 대가를 직책으로 보상해 줬다는 것이다. 그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으로까지 올라가는 모델이 있어야 함께하는 직원들이 존재감과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임원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위험 요소를 함께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CEO 혼자서 질 수 없는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 좀 심하게 이야기한다면 방패막이인 셈이다. 중소기업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CEO가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주지시키고자 하는 노력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임원들이 있다. 이들은 놀랍게도 회장 직속의 고위 임원들이다. 공식 석상에서는 CEO가 주창하는 목표를 지지하고 따르지만 사주가 기대하는 대로 이를 내면화하지는 않는다. 비전이나 장기 전략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이것이 실현되기 전에 임원직을 그만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서 올해 6년차 임원인 Y 상무는 “계열사 임원 중에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털어놨다. 그 역시 “일부 사업팀장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답인 때가 많다”고 전했다.

 맞는 말이다. 기업의 ‘별’ 가운데 윗목과 아랫목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대립이 있고 정치가 있다. 긴장과 떨림은 옵션이다.

 인사철이 코앞이다. 혹여 올해 인사에서 임원이 된다면 긴장을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임원이 됐다고 CEO로부터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사내 정치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임원은 탁월한 전략가이자 소신 있는 혁신가가 돼야 한다. 출세를 향한 출발점에 선만큼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미리 예측하고 현재를 혁신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혹시나 그동안의 노고 차원에서 올라선 것이라고 생각되면 더욱 그래야 한다.

 기업의 ‘별’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들이다. 중천금의 가치가 있게 말엔 무게를 실어야 한다.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열린 소통자가 돼야 ‘별’은 더욱 빛난다.

김동석 생활산업부 차장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