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군 이는 그룹 2PM의 리더 박재범이었다. 댐을 무단 방류하고 핵 개발이 진전했다고 발표한 북한도, 새로 여당을 이끌게 된 정몽준 대표도 온라인에선 뒷전이었다. 박재범은 몇 년 전 미국 ‘마이스페이스’에 한국을 헐뜯는 글을 올렸다. 내용이 온라인에 퍼지자 비난이 쏟아졌다. 사과를 해도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룹 탈퇴 선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불과 나흘 만의 일이다. 논란은 탈퇴 후 더욱 들끓었다. 팬 클럽은 재범의 탈퇴를 강요했다며 소속사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시사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한 인격체가 온라인에서 필요 이상으로 매질을 당하는 것을 보니 우리 네티즌들이 정말 무섭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전 연습생 시절에, 그것도 ‘사적인 공간’에서 친구에 보낸 글이 왜 뒤늦게 공적인 시비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깡그리 무시됐다. 네티즌만 탓할 것도 없다. PD수첩 수사에서 보듯 공권력이 재판도 하기 전에 작가 개인의 e메일 내용을 공개하는 나라다. 프라이버시는 인터넷 법 연구의 주요한 주제다. 연구 사례는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늘어난다.
우리 온라인 여론이 뜻밖에 획일적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지난주 한 포털의 연예 관심 뉴스 순위는 1위부터 10위까지 온통 박재범 뉴스였다. 실시간 경쟁을 벌이는 온라인 뉴스는 뜨거운 관심사로 도배하다시피 한다. 다른 뉴스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인터넷 여론 역시 네티즌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박재범 비판 또는 옹호로 획일화했다. 관심 뉴스나 실시간 인기 검색어 순위와 같은 코너는 획일성을 더욱 부채질했다. 여론의 다양성 차원에서 포털 뉴스의 현행 포맷에 대해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이버와 현실 공간은 분명히 다르다. 온라인 여론을 곧이곧대로 현실의 여론이라고 믿을 필요가 없다. 다만, 사이버는 현실 공간의 거울이다. 현실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맹목적 애국주의니 마녀사냥이니 하며 온라인에서 불거진 논란은 현실에서도 문제다.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더 심각한 것처럼 비치는 것은 ‘댓글 놀이’ 외엔 입시나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는 사람이 온라인 세상에 더 많을 뿐이다. 많은 이가 아까운 시간을 온라인에서 너무 많이 보내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온라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없앨 수 없다. 시끄럽다고 접속 차단이나 사이버 모욕죄 도입과 같이 온라인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생각은 더욱 얼토당토않다. 병의 근원엔 관심 없고 상처만 치료하겠다는 시도다. 현실 문제를 인지하고 나아가 해결하기 위해 되레 온라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온라인만큼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마당이 없기 때문이다.
무서운 네티즌을 두고 어떤 이는 익명성으로 드러난 인간의 숨은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난 믿지 않는다. 댓글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알지만 아무리 격앙된 논쟁도 상식 선에서 매듭지어진다. 네티즌은 물론이고 정책 당국도 인내를 갖고 온라인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그래야만 삐딱했던 연습생 박재범이 한 그룹의 리더로 거듭났듯이, 온라인도 다양한 의견은 물론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