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분야 ‘삼국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자회사(모회사)·지분 관계 등으로 물리적 파벌 구도를 형성해 온 3개 축의 국내 통신업계가 이르면 내년 상반기 그룹별 세 덩어리로 화학적 결합이 완성될 전망이다. 올 상반기 KT는 딴살림을 차려줬던 KTF를 불러들여 거대 왕국을 건설했다. LG 또한 직계인 LG텔레콤을 중심으로,LG데이콤·LG파워콤의 살림을 하나로 합쳐 1월께 새로운 통합국가를 건설한다. 주변 정세에 촉각을 세워 온 SK텔레콤도 더 이상은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고 판단, 내년 상반기 중에는 지금까지 자치권을 부여해 온 SK브로드밴드와 하나로 함쳐 삼국 전쟁의 최강국 지위 확보에 나설 전망이다. 이에 본지는 이번 LG통신 3사 통합 추진 상황을 심도 있게 짚어보고 이미 통합한 KT, 준비를 서두르는 SK 등을 포함한 통신시장의 지각변화를 분석한다.
KT·KTF에 이어 텔레콤·데이콤·파워콤 등 LG 통신 3사가 합치기로 하면서 ‘통합’이 통신시장의 대세임이 보다 분명하게 입증됐다. 시장에서는 SK진영도 이를 거스르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고 실제 SK 내부에서는 조만간 SK텔레콤·브로드밴드 통합이 공식화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무선 통신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이왕 통합을 할 것이라면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고 보고 있다. 어차피 앞으로 시장에서는 통합그룹별로 사활을 건 총력전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적이 안 나는 일부 사업을 포기하는 등 과거와 같은 선택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져 그룹들은 생존을 건 ‘모 아니면 도’의 혈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G그룹, 탄탄하게 준비했다=LG그룹의 통신사업은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타 그룹과의 빅딜이 거론될 만큼 그룹 내 위상이 낮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데이콤과 파워콤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국내 통신 3강의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계열사로 운영되던 LG 3개 통신그룹이 합치면 연매출 8조원의 유무선 통신업체로 거듭나게 된다. 일각에서는 무선부문은 별도로 가겠다는 계획이 급변경된 것 아니냐며 혼란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LG 고위 관계자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놓고 고민해 왔으며, 유무선 통합은 이미 1년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주 중 열릴 3사의 각 이사회에서 합병 건이 공식 승인되면 보다 가시적이고 빠른 진행이 예상된다. LGT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최근에야 합병 TF가 조직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미 지난해부터 물밑작업이 진행돼 왔다”고 말해 합병을 위한 정지 작업이 상당 부분 진척돼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통합의 실질적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한전의 동의를 받아 놓은 데는 LG전자 부회장 출신인 김쌍수 현 한전 사장의 암묵적 협조도 큰 작용을 했다.
◇SK 유무선통합법인 출범, 내년 상반기 예상=KTF와 합병한 KT가 유선에서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유무선시장의 왕좌를 노리고, LG도 통신 3사를 합쳐 유무선 종합통신업체로 변신을 꾀하자, 무선시장의 절대 강자인 SKT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하나로통신을 인수해 SK의 유선통신부문 계열사로 SK브로드밴드를 확보한 SK그룹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이를 합쳐 연매출 20조원의 거대 KT에 도전장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SK 유무선통합법인의 연 매출 규모는 14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3사 통합으로 8조원 규모를 형성하게 될 LG통신 그룹과 20조원 KT의 사이에서 2위 종합통신업체라는 입지를 갖는 것이지만 1위 무선사업자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위 탈환에 매진하게 된다.
◇제대로 붙어보자=LG 통신 3사가 통합법인으로 출범한다해도 규모면에서 경쟁사를 따라 잡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선과 무선 시장 모두에서 절대적 1위 사업자들에 휘둘렸던 상황이라면, 유무선 통합시장에서는 틈새와 시너지를 노리며 한번 해볼만하다는 것이 LG 진영의 판단이다. LG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덩치가 훨씬 컸던 경쟁사와의 시장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고, 합병 후에는 상대적으로는 가장 규모가 작지만 나름의 체격을 갖추게 되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며 “특히 타사의 경우 3G 전국망을 구축한 반면 LG는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3G망을 구축해 부담이 없는 만큼 저대역 주파수 확보로 차세대 통신망 구축을 진행하면 시장 판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LG로서는 이제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관대한 처분을 기대할 수 있었던 ‘후발’이라는 우산을 벗어 던져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특히 경쟁사들은 이런 점에서 LG 통신 3사 합병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KT 고위관계자는 “차라리 잘됐다. 이제 우는 소리는 못할 것 아니냐”고 말해 양보없는 한판승부가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업계는 이번 LG 통신 3사의 합병이 지난 10년간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여온 국내 통신산업의 전반적인 레벨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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