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 이은 LG의 통신계열 3사 합병은 서비스 뿐만 아니라 장비 시장의 패러다임 전환도 이끌 전망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기는 했지만 그 동안 유·무선으로 구분, 이뤄지던 통신사업자의 투자 패턴이 컨버전스에 맞춰 크게 변화할 전망이다.
통신사업자의 투자 패턴 변화는 장비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과 맞물린다. 컨버전스 시대를 준비한 후방 장비기업들은 그 과실을 따겠지만, 기존 관행을 유지해온 업체은 몰락이 불가피하다. 또 통신사의 선택 기준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군소 업체는 경쟁 대열에서 탈락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향후 몇 년간은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규모도 키워갈 수 있을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악재보다는 호재가 더 많아 보인다. 우선 컨버전스로 인한 새로운 장비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진행되는 유무선통합(FMC)에 대한 KT의 투자를 보면 알 수 있다.
KT는 지난 14일 가정용 FMC 서비스인 ‘홈 FMC 서비스’를 발표했다. 이 서비스는 WCDMA와 무선랜(WiFi)를 단일 휴대 단말기에 결합해 가정이나 무선랜 공유기가 설치된 장소에서는 무선랜으로 저렴하게 통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에는 당장 ‘WCDMA+무선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단말이 필요하다. 그 동안은 투자가 거의 없던 AP 보급에도 나서야 한다.
LG데이콤이 인터넷전화(VoIP)를 보급하면서 공급한 AP만 150만개다. 또 일반 고객들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컨버전스 서비스를 위해서는 인프라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유무선 통신사업자 간 결합으로 인한 다양한 서비스가 만들어진다면 그에 맞춰 시스템, 단말 등 각종 장비도 함께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LG 통신3사 합병은 국내 통신시장, 특히 컨버전스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LG텔레콤은 지난 2007년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했다. 통신사업자 중에서는 가장 최신 버전을 갖고 있다. 이 시스템은 3사의 합병을 전제로 구축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 설계 단계부터 상품, 고객 정보, 빌링 등 모든 통합 기반을 갖췄다. 개통과 관련된 부분만 보완하면 3사 통합의 시너지를 위한 모든 인프라가 완성된다.
도입 준비에 들어간 모바일 IPTV 등 신규 융합서비스를 예상보다 훨씬 빨리 선보일 수도 있다. 당연히 관련된 복합 장비 등의 수요도 함께 늘어날 전망이다. KT 합병과 다른 측면에서 지켜봐야 하는 대목이다.
KT합병, LG 3사의 합병은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의 통합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이 부문도 장비 업계에 호재다.
SK브로드밴드가 SK텔레콤과의 인프라 격차를 좁히기 위해 열심히 투자에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합병을 위해 SKT가 2002년 오픈한 차세대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나 아키텍처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막대한 투자가 뒤따를 수 있다.
단기적, 지엽적인 관점에서 통신사업자 간 합병은 장비 업계에 악재다. KT와 KTF의 합병에서 알 수 있듯이 합병 전후 6개월, 1년은 투자가 거의 중단된다.
통신사업자 만을 바라보고 있는 장비 업체는 그 기간 동안 손 놓고 지낼 수 밖에 없다. 실제 KT, KTF에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들 중에서 합병을 전후로 제대로 된 실적을 기록한 곳은 거의 없다. LG텔레콤 등 합병 3사는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정 기간 투자지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장비 업계 입장에서는 수요처가 줄어든다는 점도 반가운 일은 아니다. 통합 이전에는 KT, KTF에 각각 공급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통합이 완성되면 그 기회가 줄어든다. 중계기 회사를 예로 들면 KT에는 와이브로, KTF에는 WCDMA 중계기를 공급하는 식이다.
구매처가 줄어들면 사실상 신규 업체의 진출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 같은 여건이 궁극적으로 통신장비 업계에도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춘 중견기업의 출현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를 키운 합병 통신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를 안정적인 공급 파트너로 확보하기를 원한다. 실제 KT는 합병 뒤 우수 협력사 위주의 장기 협력 모델을 구매의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비슷한 규모의 군소 업체가 난립하던 통신장비 업계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출현이 가능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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