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게임 산업을 너무 만만하게 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정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법으로 없애려 한다. 산업계의 반발은 당연하고 위헌 소지마저 짙다.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니라면 정치권은 게임 산업을 너무 모른다. 범인은 따로 있는데 기업이 사행성을 조장하는 장본인이라고 몰아붙인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잣대를 들이대는 무지의 소치다. 일부 국회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간접충전금지법’ 얘기다.
간접충전금지법은 웹보드게임에서 아바타 등 게임 아이템을 사면 게임머니를 주는 행위를 금지시키자는 게 뼈대다. 도입 취지는 긍정적이다. 국민의 일부가 웹보드게임에 중독돼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좋은 취지를 방법론이 망치고 있다. 고스톱이나 포커 등 웹보드게임의 사행성은 게임머니의 거래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간접충전을 금지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일견 타당해 보인다. 판돈을 몰수하면 도박판이 생기지 않는다는 논리다. 아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웹보드게임 이용자 중 95% 이상은 간접 충전을 하지 않는다. 게임머니를 위해 월 10만원 이상 간접 충전하는 이용자는 1% 미만이다. 이 중에서 또 일부가 ‘웹보드게임 폐인’ 신세다. 결국 관건은 이들은 어떻게 정상적 국민으로 되돌려 놓는지에 달려 있다.
웹보드게임 폐인은 눈에 보이는 게임머니를 없앤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머니의 시세가 급등, 사기나 폭력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공개된 집창촌을 없애자 성매매 업주들이 수도권에 새로운 자리를 틀거나 주택가로 스며들어 더욱 변태적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바람이 꽉 찬 풍선은 한쪽을 세게 쥐어도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부푼 부분을 억지로 누르면 결국 풍선은 터진다. 서서히 바람을 빼야 한다. 웹보드게임의 사행성으로 생기는 폐해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불법 게임머니 환전상의 근절이다. 이들이 사행성의 주범이다.
간접충전금지법은 불법 환전상을 효과적으로 뿌리 뽑는 제도로 대체돼야 한다. 불법 게임머니 거래는 사이버 마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선행해야 하지만 현행 게임법에 명시된 불법 환전상 대상 양형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법하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졌다. 지도자 N 러드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 운동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계를 파괴하는 형태로 영국 전역을 휩쓸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불황과 실업자 증가의 주범을 애꿎계로 삼았다. 결과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가혹한 탄압만 초래했다. 웹보드게임은 디지털 혁명 과정에서 급성장한 콘텐츠 산업이다. 부작용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그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다면 이는 200년 전 영국 노동자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재현하는 셈이다.
오는 16일 게임물등급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전망이다. 보나마나 일부 국회의원들은 증인으로 채택된 게임 업계 인사들을 사행성 조장 혐의로 질타할 것이다. 호통을 쳐도 무방하지만 법·제도만큼은 제대로 만들기를 바란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