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도체 치킨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데스크라인]반도체 치킨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조업이자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반도체 산업에 반가운 소식들이 이어진다. 하이닉스반도체가 거의 2년 만에 지난 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1조원 이상의 이익이 기대된다. 세계 D램 시장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하이닉스를 빼면 일본 엘피다 정도만이 간신히 적자를 탈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년여간 골 깊었던 불황의 터널을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이 슬기롭게 헤쳐나온 성과다.

일단 자축할 만하다. 무엇보다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튼튼한 체질과 규모의 경제력(양산 경쟁력)은 누가 뭐래도 한국만의 강점이다. 그러나 다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너무 단순한 해석일지 몰라도 우리가 특별히 뭔가 잘했다기보다는 해외 경쟁사들이 치열한 치킨게임을 견디지 못한 것이 더 크지 않을까. 메모리 가격이 오르는 것도 얼마나 갈지 조심스럽다.

일본·대만·미국 등 해외 경쟁사를 보자. 아마 쉽게 시장에서 물러나지 않을 듯싶다. 반도체 산업은 일반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는 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국가 핵심 기술로 인식하는 산업인 탓에 각국 정부는 국익과 자존심을 걸고 존립시키려 할 것이 뻔하다. 사정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아직 완전히 문을 닫은 곳은 없다. 특히 일본 엘피다는 대만에 메모리 제조 사업을 확대하고 최초의 해외 연구개발(R&D) 거점을 두기로 하는 등 대만과 연합전선을 형성하며 재도약을 꿈꾼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재료 등 원천 기술에 관한 한 종주국이다. 이들이 불황기 이후 어떤 생존 전략으로 우리를 위협할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만일 하이닉스가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면 더 큰 위협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의 현주소를 다시 생각한다. 세계 메모리 시장 1위라는 삼성전자. 때론 약점일 수 있지만 삼성전자는 세계 기업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사업 구조를 구축해 놓았다. 첨단 가전에서 부품·소자에 이르기까지 이만한 포트폴리오가 없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웬만한 세트 제품은 대부분 메모리 반도체 수요처다. 그런데 지난 2년여간 반도체 불황기를 겪으면서 메모리 신규 시장을 창조하려는 근본적인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계 시장의 ‘아이콘’이 될 만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세트)을 만들어내는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 유수의 세트 업체인 삼성전자조차 PC·노트북·MP3플레이어 등 기존 시장만 쳐다보고 D램 가격 반등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미세 공정기술을 비롯해 마른 수건 짜내듯 생산성과 수율을 향상시킨 노력을 인정하지만 삼성전자의 위상에 어울리는 시장 리더십은 아쉬웠다.

더욱이 작년 이맘때를 기억해보자. 극단적인 엔화강세 현상에다 최악의 경기 전망에 호들갑을 떨었던 당시 반도체 장비·재료의 대일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발등의 불’이었다. 지속적인 원가 경쟁력은 물론이고 핵심 원천 기술에서 극일을 시도해 볼, 어쩌면 가장 좋은 기회였다. 지금 1년 전과 비교해 과연 근원적인 경쟁력에서 달라진 게 무엇일까. 지금은 시황이 호전돼 한숨 돌릴 뿐이다. 너무 비판적인 시각일지 모르지만, 치킨게임에서 이겼다고 자찬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서한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