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정부가 더 많은 ‘기회’를 만들라

[데스크라인] 정부가 더 많은 ‘기회’를 만들라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열정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상반기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맬컴 글래드웰은 이 질문에 전혀 아니라고 답한다. 천재성과 노력에다 좋은 기회(여건)가 맞물려야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최고에 오를 수 있다는 일반적 성공담론과 다른 접근법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세계 최고 기업 가운데 하나로 만든 빌 게이츠. 아버지는 시애틀의 부유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잘나가는 은행가의 딸이었다. 컴퓨터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1960년대에 빌 게이츠는 좋은 사립학교에서 컴퓨터 환경을 접했다. 10대 시절 그는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밤을 새워가며 최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볼 기회도 얻었다.

 애플컴퓨터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자란 곳은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마운틴뷰라는 지역이다. 여기가 지금 실리콘밸리의 중심지다. 어린 시절 잡스의 이웃 다수가 휴렛패커드의 엔지니어였다고 한다. 10대 시절 그는 주변에서 IT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여러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게이츠와 잡스 모두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성장 기운을 마실 기회를 얻은 것이다.

 눈을 돌려 우리나라 벤처스타들을 살펴보자. 엔씨소프트 김택진,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NHN 이해진, 아이디스 김영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났으며 1990년대 중·후반 창업을 했다. 이들도 주변 여건이 맞아떨어졌다. 창업 시점은 대략 우리나라 경제가 IMF를 겪거나 극복해 나갈 무렵이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벤처기업 육성을 강력하게 주창할 즈음이다. 이들의 나이는 그 무렵 30세 전후였다. 이공계 석박사들로 디지털·IT 등의 새로운 추세에 남들보다 빨리 합류할 수 있었다. 벤처 열풍과 맞물려 비교적 투자를 받기도 용이했고 주변 인식도 좋았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스타급 CEO들도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갖췄고 충분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좋은 기회, 정책이 맞물렸다는 점도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옛 정보통신부는 많은 IT 투자로 기술개발을 독려했다. 과학기술부는 젊은 영재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힘썼다. 정부가 ‘판’을 벌였다.

 아쉽게도 앞에 열거한 세대 이후에는 젊은 스타 CEO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공대보다는 의대를 선호하고, 벤처기업보다는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집착하는 게 최근 대학가의 풍경이다. 그 사이 정통부는 없어졌고 과기부는 교육부와 통합되면서 반쪽이 됐다.

 최근 정부가 중소기업과 IT에 대한 관심을 다시 높이고 있다. IT특보를 만들었고, 기업호민관 자리도 신설했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세부 정책을 만든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정부의 중소기업·IT정책 전환에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 또한 정부의 몫이 될 것이다.

 정부가 나서 벤처와 IT분야에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개개인의 천재성과 노력에만 기대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판을 벌이길 기대한다.

  김승규 G밸리팀장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