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전쟁’의 계절이 다가왔다. 국회는 이달 산적한 법안처리를 놓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정기국회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진다. 이미 세종시법, 행정구역개편법, 공영방송법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기다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왜 항상 욕을 먹어가면서도 입법에 사생결단식일까. 바로 법의 힘 때문이다. 일단 법을 만들면 규칙이 바뀐다. 결국 사회질서를 재편한다. 미디어법을 두고 여야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기도 하다. 정치적 쟁점 법안에 목숨을 거는 의원들을 무조건 욕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요즘 국회의 법 제정 과정이 너무 정치적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사라지면서 민생이나 시급한 제도 등 가치중립적인 문제마저 정치 쟁점화하기 일쑤다.
지난해 말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지원정책을 연구할 조직을 마련하자는 것이 뼈대다. 가끔 정체 모를 광고성 전화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개인정보보호가 얼마나 시급한지 알 것이다. 나도 모르게 빠져나간 정보 때문에 인터넷으로 예금이 빠져나갈까 덜컥 겁이 난 경험도 한번쯤 있을 것이다. 지난해 GS칼텍스·옥션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여야 의원들은 이 때문에 하루빨리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 법은 벌써 1년 가까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당초 취지와 달리 정치 쟁점화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부 입법안의 추진 체계를 문제 삼고 나왔다. 정부 입법안에 명시된 정부 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독립기구로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일리가 있다. 독립된 전문 행정위원회로 출범해야 조직을 제대로 갖추고 더욱 강력한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개인정보를 많이 다루는 정부를 감시하려면 별도의 독립기구여야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주장은 비정치 법안을 정치 법안으로 바꿔놓았다.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작은 정부’를 바로 거슬렀기 때문이다. 당장 여당이 발끈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충돌하면서 결국 공청회까지 거쳤다. 정기국회에서도 개인정보보호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독립 위원회냐 아니냐가 화두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참 아이러니다. 여야 의원들은 저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법 제정에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정치적 문제의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하다. 모두 한 발씩 물러서는 것이다. 특히, 야당의 결자해지가 요구된다. 이미 공청회를 거치면서 정부 위원회에 민간위원들을 참여시키는 절충안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7·7 분산서비스거부(DDoS) 사태처럼 대규모 개인정보보호 유출사건이 다시 터져야 의원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농담 아닌 농담도 한다. 그러나 유출된 개인정보는 ‘엎질러진 물’과 같다. 물이 엎질러지면 주워 담기보다는 책임지는 일만 남는다는 사실을 의원들은 알아야 한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