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휴무일인데도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방통위 상임위원들과 실·국·과장, 프로젝트매니저(PM) 6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방송통신미래서비스전략토론회’를 위해서다. 사실 방통위의 중요한 정책 결정은 상당수 주말에 이뤄진다. 워낙 민감한 결정이 많아 사업자의 주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 긴급 소집이 많다. 지난 토요일 토론회는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 결론을 내는 자리도, 다른 부처나 기업이 직접적으로 이해 관계가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는 방통위의 미래에 이정표가 될지 모른다.
‘이동통신의 속도 경쟁은 끝났다. 다음 경쟁 포인트는’ ‘집에서 개인이 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 모델은 실현성이 있다’ ‘차차세대 TV 서비스는 언제부터 가능하며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가’ 등등 이날 회의에선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미래성장 기반을 만들어나갈 참신한 서비스 모델, 그러나 당장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아이디어들이다.
방통위 출범 후 미래서비스와 기술개발을 논의하기 위해 위원장 이하 실·국·과장들이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방통위가 규제 일색의 기관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단초로 작용할 자리기도 했다. 최시중 위원장의 관심도 높았다. 규제, 이권 다툼의 중재, 정치적 판단 등으로 지친 위원장은 마치 SF 영화를 보듯 우리 IT의 미래상을 펼쳐보는 자리에 신선함을 느꼈다고 한다. 위원장은 이날 차세대, 차차세대 방송통신 미래서비스 모델에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바쁘더라도 이 같은 토론을 주기적으로 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발표를 맡은 PM들은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업계를 돌며 설계해 본 미래 기술을 망라하며 그림을 그렸다. 통신방송 분야의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방통위 실·국장들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방통위는 이날 발표를 뒤로하고 다시 다른 부처와 R&D 과제 선정을 놓고 머리를 맞대야 했다. 중장기 먹거리를 찾는 미래 기획과 별개로, 당장 R&D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처와 함께 기업들이 당장 상용화를 위해 제시한 R&D를 바텀 업 방식으로 선정하는 작업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말 토론회를 거친 방송통신미래서비스 전략도 당장 고려 대상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미래전략과 R&D 예산 투입 논의는 완전히 단절됐다.
통신방송, 특히 정보통신(ICT)은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분야다. 세계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배우려 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다. 이를 계속 발전시켜야 할 책무를 우리는 지고 있다. 과거 지식경제부(옛 산자부)가 기획한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은 지금도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다. 부처별로 나눠 책임 있는 주체가 방향을 정하고 밀어붙인 덕분이다. 통신방송의 방향 설정과 이의 R&D 책임은 방통위에 있다. 눈에 보이는 과실만 따 먹기에 급급한다면, 리스크 없는 당장의 성과에만 연연한다면, 다른 산업의 IT화에 정보통신진흥기금을 몰아준다면, ICT 업계는 유실수를 키울 토양조차 잃을 수 있다. 미래를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책당국의 미래 또한 없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