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위기 당시 세계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이 전망은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근거를 바탕에 뒀다. 금융위기로 소비가 위축된다면 수출입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무역량이 많은 한국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들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FTA 체결로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체결 상대국 시장을 선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기업들이 한미 FTA 및 한·EU FTA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하고 일본 및 중국 등 체결국가를 확대하도록 요구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정부의 추진 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업의 준비 및 활용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우리 기업들은 FTA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FTA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말하지만 아직까지 그 열매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 초까지 전체 수입액에서 FTA 특혜관세를 활용한 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나라는 20.8%에 불과해 일본(29.0%)이나 태국(24.9%)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무역협회 조사에서도 FTA 특혜관세를 활용한 업체 비중은 대기업이 26.4%, 중소기업이 16.3%에 불과했다. 미국 등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은 3개국 기업의 평균 활용도(64%)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에 FTA를 제대로 활용한 기업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더페이스샵, 이노센트가구, 이건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더페이스샵은 한·아세안 FTA 체결 이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국가를 일본에서 태국으로 변경했다. 그 결과 클렌징 품목에서만 연간 6억원가량의 관세 인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FTA를 잘 활용하면 수출가격 경쟁력 강화와 수입원가 절감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기업의 FTA 활용률이 낮은 이유는 협정에 따라 원산지 결정기준이 다를 뿐 아니라 관세혜택 절차가 기존 무역통관체제와는 다른 조건, 규정 등이 적용되는 것에 기업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개별 FTA마다 원산지 결정기준 등 복잡한 활용절차와 규정으로 인해 활용도가 저하되는 ‘스파게티 보울(spaghetti bowl)’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소기업들도 FTA 특혜를 받기 위해 무역실무, 어학능력을 비롯해 FTA 원산지 규정, HS 품목분류, 원가회계 등 여러 분야의 능력을 갖춘 인력을 스스로 양성해야 한다. 수출계약 단계부터 수출물품의 원산지 결정기준을 확인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한 사전준비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회사 자체적으로 FTA 원산지 판정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 원재료의 원산지 정보 및 원가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FTA는 체결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준비가 있을 때 FTA의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권상희 경제과학팀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