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e북 시장, 남의 잔치가 돼선 안된다

[데스크라인] e북 시장, 남의 잔치가 돼선 안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사내로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말이 나온 8세기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니 수독오거서가 남자에게만 국한될 얘기는 아니다. 지식정보화 시대 국민의 독서량은 곧 국가경쟁력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국민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8년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율은 72.2%다. 성인 10명 중 3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도 10명 중 1명이 책을 읽지 않는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초등학생 1인당 연간 평균 도서관 도서대출 건수가 35.9권을 넘어섰다며 흡족해 한다. 조사를 시작한 1954년 이후 최대치라는 의미도 부여한다. 여세를 몰아 일본 의회는 내년을 ‘국민독서 문화의 해’로 지정하기로 했다.

요즘 일본은 의미 있는 일을 벌인다. 일본 최대의 서고를 자랑하는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장서를 디지털화해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국회도서관은 저작권 시효가 지난 옛 시대의 서적 약 15만권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으로 무료로 제공해왔다. 올해는 1968년 이전의 도서 약 90만권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인터넷에 친숙한 꿈나무들이 고서를 쉬 접하게 하기 위해서다. 출판업계에 득이 되는 이익분배 규정도 마련할 계획이다.

국민의 독서량 증가는 지식수준 향상의 효과 외에 관련 산업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전자책(e북) 콘텐츠 및 e북 단말기 사업엔 더욱 그렇다. 미국과 일본의 정부 및 출판업계, 도서유통, IT 업계가 서적 디지털화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은 요즘 e북 관련산업 성장 가능성에 한껏 고무됐다. 올해 미국시장 e북 단말기 판매량은 30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3분기까지 200만대가량이 팔렸다. 남은 연말시즌에만 100만대 이상이 판매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진다. 기존에 출시된 아마존 킨들 시리즈와 소니의 데일리에디션을 비롯해 최근 이 시장에 가세한 반스앤드노블의 누크에 이르기까지 없어서 못 판다는 말도 나온다.

2007년 판매된 e북 단말기는 15만대에 불과했지만 불과 2년 사이 스무 배로 커졌다. 단말기의 고성능화도 한몫했지만 단기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콘텐츠의 역할이 더 크다. 아마존의 e북은 약 33만권, 소니는 10만권, 반스앤드노블은 70만권에 달한다. 오래전부터 e북 시장에 눈독을 들여온 구글은 지난 5년간 1000만권에 가까운 e북을 이미 확보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그중 50만권으로 유통사업을 펼칠 태세다. 세계 e북 콘텐츠 시장이 지난해 18억4000만달러에서 2013년에는 89억4000만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왔다.

21세기 최고의 자산은 디지털 지식재산이다. 특히 도서 디지털화는 산업 경쟁력에 직결된다. e북 관련 시장이 남의 잔치가 되기 전에 독서인구를 늘리고, e북 콘텐츠 축적 및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정부와 업계의 정책·산업적 노력이 절실하다.

최정훈 국제팀장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