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힘은 현장이고, 현장의 경쟁력은 기능인력에서 나온다.” “옛날 기능올림픽 때 카퍼레이드했던 생각도 난다. 금형·사출·선반 등의 기능인력이 기술을 쌓고 경제를 발전시킨 혜택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게 아니냐.” “우리나라는 결국 제조업이고, 다른 나라보다 경제 위기를 빨리 극복해가는 것도 산업 구석구석에 있는 기능 인력의 저력 덕분이다.”
얼마 전 기능인의 중요성이 잠깐 화제에 오른 적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 참석해 기능인의 존귀함을 강조했던 발언이 알려지면서다. 이 전무가 기능인의 가치를 새삼 언급한 것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금형·사출·선반 등 생산 기반 기술은 말 그대로 제조업의 근간이다. 부품소재가 제조업의 ‘쌀’이라면 생산 기술은 그 속에 녹아든 ‘농부의 손길’이다. 대한민국의 제조업을 생각하는 그가 가진 기능인의 역할론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과 고급 인력 양성을 화두로 내건 마당이다.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우리 전자산업계에서는 현안이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협력사 가운데 기능인이 가장 많이 일하는 곳은 삼성전자의 ‘을’도 아닌 ‘병’, ‘정’에 해당하는 2, 3차 협력사들이다. 또 이 사업장들은 국내에서 가장 영세한 사업장 중 하나다. 이 전무가 역설한 금형 산업만 놓고 보자. 금형은 첨단 전자 부품을 대량 양산하기 위한 핵심 생산 기반 기술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금형 생산 규모는 무려 6조원대로 세계 5위권이다. 그런데 3675개에 달하는 우리나라 금형 업체 가운데 50인 이하 영세 사업장이 무려 95.7%에 달하는 3513개다. 삼성전자의 눈으론 영세하기 짝이 없는, 그나마 병·정 축에 끼지도 못한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협력사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관리해왔는지는 제조업 현장에선 이미 정평이 나있다. 2,3차 협력사들까지 지정해 관리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며, 1차 협력사들에 주는 단가 인하 압력은 100% 이들에 전가된다. 규모가 영세하다보니 1차 협력사들이 받는 타격보다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경기가 좋아도 기능인 양성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나빠지면 살아남을 걱정부터 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에서 2,3차 협력사들의 취약한 체질은 정부도 어쩌지 못한다. 삼성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올해 겨우(?) 매출액 1000억원을 넘기는 한 2차 부품 협력사 관계자는 이렇게 질타한다. “최소한의 이익이라도 남기기 위해 하루하루가 전쟁터인 마당에 우리 스스로 기능인을 양성하겠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란다. 기능인에 대한 삼성전자의 애정을 좀 더 실천적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