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마사이족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왜 그럴까?.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다. 팬택이 그랬다. 29살에 경영일선에 뛰어들어 통신분야에서만 19년 한 우물만 판 박병엽 부회장의 기업개선과정이 그렇다.
지난 3년간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했다. 무박 3일의 미국 출장은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의 마음을 얻어냈다. 미국 특허괴물 IDC의 로열티 출자전환도 솔직함과 엄포, 친화력으로 만든 승리였다. 국내 제1금융권을 비롯해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의 추가 출자전환도 집념의 결과다.
“졸면 죽는다는 각오로 3년을 달려왔지요.” 그의 얼굴엔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 지난해 12월31일 성공 신화를 다시 쓸 합병법인 ‘팬택’이 출범했다. 시장은 팬택이 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그는 말한다. 과거의 실패와 아픔을 딛고 일어설 노둣돌을 겨우 놓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대신 “앞으로 2년은 더 고생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개선작업 착수 이후 확연히 달라진 점은 ‘재고’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이다. 최적화를 위해 영업, 마케팅, 생산 등 모든 부서는 끊임없는 미팅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회의가 많은 회사, 일찍 출근해 한밤중에 퇴근하는 회사가 됐다.
박 부회장은 올해 ‘성장’을 내걸었다. 지금까지 성장통이었다면 이제부터 살아남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신제품 조기 출시, 브랜드 마케팅 강화, 대형 거래처 신규 확보 등 공식화된 경영전략으로는 부족하다. ‘창업-성장-좌절-재도약’이라는 과정에서 팬택은 지금 ‘좌절’단계의 맨 끝에 와 있다. 그 다음이 ‘재기’와 ‘부활’ ‘재도약’이다.
팬택은 지난해 11월 풀터치폰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섰다. 다양한 휴대폰을 동시에 홍보하고 마케팅력을 쏟는 경쟁사와 달리 오직 풀터치폰에만 집중했다. 남들보다 어려웠고 힘들었다. 자금력이 부족했기에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여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작은 승리였지만 의미는 상당했다. 워크아웃 이후 10분기 연속 흑자행진도 이뤄냈다.
지난 4일 대한민국에 눈폭탄이 떨어졌다. 출근길 교통대란을 겪던 그날 대부분의 관공서와 기업들은 시무식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청와대 국무회의도 폭설을 감안해 회의를 20분이나 늦췄다. 팬택의 2010년 1월 첫 시무식은 달랐다. 과장급 이상 400여명의 직원들이 참석한 아침 7시 팬택의 강당은 가득 찼다. 박부회장은 이에 대해 ‘기차는 정시에 출발한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며 투박하게 답변했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단순히 단말기만을 팔아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로 급변했다. 아이폰 신드롬이 시작됐고, 지난 주 CES에선 글로벌 기업간 모바일 전쟁이 벌어졌다. 박부회장에게는 싸워야할 적과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다.
청와대는 올해를 벤처 제2의 전성시대를 여는 해로 규정했다. 하지만 벤처 1세대 대표주자는 창업에서 성공, 좌절과 재기로 이어지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2010년 우리 사회에서 벤처기업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마사이족의 기우제처럼 단비가 내릴지 주목해 볼 일이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