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통신B2B, 긴 호흡이 필요하다

[데스크라인] 통신B2B, 긴 호흡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장(長)’ 자리는 단기적으로 달성한 숫자에 좌우된다. 기업 생리상 매년 재평가를 받는 셈인 대기업 조직에서 그해 숫자(매출)를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로 해당 사업부의 장과 심지어 수장의 수명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이 때문에 모든 ‘장’들은 새롭게 뭔가를 시도하기보다 기존 사업의 틀에서 기름을 짜듯 ‘숫자’를 만들어내는 유혹에 빠진다. 단기간에 열매를 딸 수 있는 일만 찾아 헤매고, 묵묵히 거름을 주는 일을 도외시하는 CEO도 제법 많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꼭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통신 업계에 전혀 새로운 접근 방식이 나타났다. 주력 사업의 실적을 더 잘 내기 위해 조직을 짜던 것과 달리 단기 실적을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 아이템을 대표주자로 내세웠다. 안정성보다 성장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KT의 SMART, SK텔레콤의 IPE, 통합LG텔레콤의 탈통신 등 기업 통신사업 이른바 ‘통신 B2B’ 사업이 그것이다. 통신 B2B는 중장기적으론 중요하나 단기적으로 획기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기업 내부에서 조차 새로운 시도에 총대를 멘 조직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차출된 면면과 배경을 보면 시기심이 발동하면서도 잘나가던 행보가 여기서 멈추겠거니 하는 묘한 심리도 병존한다.

 B2C와는 달리 통신 B2B 사업은 철저히 자신을 버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 사업을 맡은 구성원들은 내가 뿌린 씨앗을 후임자가 수확할지언정 철저하게 조직의 논리를 앞세워야 한다. 기존 통신 B2C 사업이 뺏고 뺏기는 단기 승부라면, B2B는 미래성장 동인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B2B사업 구성원에 대한 평가 방식을 ‘실적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철저하게 ‘을’의 입장을 감수해야 한다. B2B 사업은 사업자 간 경쟁에 성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타 분야 기업)에게 어떤 메리트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면서 설득해 나가는 긴 호흡이 중요하다. 새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작업인 만큼 단기 실적에 연연하다보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B2C와 달리 B2B 사업은 단 한 번의 결정에 수백·수천억원이 오간다. 결정권도 전적으로 갑(기업 고객)에게 있다. ‘을’의 입장에서 실적에 떠밀려 초조함을 보이면 상대는 오히려 느긋해지는 특성도 감안해야 한다. 해외 u시티 비즈니스가 실무자 선에서 합의된 이후에도 성사되지 않고 미뤄지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고 한다. 지금 선각의 길을 가는 통신업계 리더들은 쓴 ‘인내’만을 감수하고, 달콤한 ‘열매’를 다음 사람에게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달콤한 열매만을 따려 한다면 통신산업을 성장 체질로 바꾸는 작업은 요원하다. 통신 업계 수장들이 지금 가시밭길을 택했다. 상처투성이의 행진이 될지언정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심규호 통신방송 팀장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