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법과 제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고 해도 선거법 93조는 정도가 심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청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93조 1항 적용이 시대착오적이다.
선거법 93조 1항은 ‘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누구든지 선거일 전 180일부터(중략)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중략) 광고, 인사장(중략),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중략)할 수 없다’가 법조문이다. 한 마디로 사전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여기서 가장 쟁점이 되는 문구가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이다. 이달 초 경찰청과 선관위가 트위터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법적 근거도 여기에 있다. 이 방침은 두 가지 시대착오적 발상과 한 가지 실현 불가능한 맹점을 포함한다.
첫 번째 낡은 발상은 사라져버린 법안 취지다. 선거법 93조 1항의 입법 취지는 ‘금권 선거’ 방지다. 돈 많은 정당이나 후보자가 인쇄물이나 광고물을 독점하는 현상을 막으려는 조항이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다수의 국민이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을 가로 막고 있는 셈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력이나 권력, 폭력, 학연 지연 혈연 등을 막아야 할 선거법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상호 비판을 차단하고 있다”라며 “국민들이 떠들수록, 그리고 과열될수록 민주주의는 발전하지만 선거법 93조가 모든 것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인터넷 시대에 대한 몰이해다. 데스크톱 인터넷 시대를 지나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 모바일 인터넷은 유권자들에게 정당과 후보자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일방적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의견을 교환하고 집단 지성을 모으는 양방향 미디어이기도 하다. 모바일 인터넷을 민주주의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정부 기관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를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은하여행이 일반화됐는데 도로교통법을 들이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청과 선관위의 단속 방침은 실현되기 어렵다. 이들이 지목한 트위터는 국내 인터넷 규제를 받지 않는다. 트위터 가입에는 주민등록번호도 필요 없고 실명제 대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국내 인터넷 업체야 권력의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자 정보를 내놓지만 폭넓은 사이버 민주주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해외 인터넷 업체들이 이를 따를 리 없다.
선거법 93조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도 재판관 다수가 위헌의견을 낸 바 있다. 특히 재판관 중 5인은 앞서 말한 ‘기타 유사한 것’ 문구가 ‘이어령 비어령’ 격이며 ‘지나치게 확대 적용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윤석근 중앙선관위 법제과장조차도 최근 열린 ‘선거법 93조 개정 토론회’에서 “(선거법 93조는) 이중규제가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으며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하다는 공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6월 지방선거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장이 될 지, 아니면 선량한 국민들을 선거사범으로 몰아가는 함정이 될 지 기로에 섰다. 선거법 93조 개정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