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영(令)이 안 서는 나라

[데스크라인] 영(令)이 안 서는 나라

 전국시대 진나라 효공 때 일이다. 장안에 방 하나가 붙었다. ‘동문에 놓인 나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면 금 오백냥을 주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뒤 상금을 두배로 올려 천금을 주겠다는 방이 다시 붙었다. 그제야 한 청년이 나서 나무를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쯧쯧…” “용기도 대단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하지만 나무 기둥이 북문으로 옮겨졌을 때 이들은 깜짝 놀랐다. 나라가 약속한 대로 천금을 곧바로 내놓는 것이 아닌가.

 진나라 재상 위앙이 벌인 이 일화는 유명하다. 법치주의자였던 위앙은 나라의 신용과 위엄을 드러낸 뒤 국법을 시행했다.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변방의 진나라는 이를 발판으로 훗날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다.

 최근 2000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허술한 법치가 도마에 올랐다. 개인정보를 해킹 당한 20여개 업체 대부분이 데이터베이스(DB) 암호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면서 DB 암호화는 의무사항이 됐지만 대부분 지키지 않았다. 정부는 부랴부랴 특별단속반까지 가동하고 “걸리면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무신경하다.

 ‘종이 호랑이’가 된 제도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대통령까지 모시고 발표한 ‘SW강국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왜곡된 시장 생태계를 바꾸자는 것이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대기업간 컨소시엄을 금지하거나, 중소기업 컨소시엄에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조차 이 정책을 깡그리 무시했다. 대기업간 컨소시엄을 버젓이 허용하면서 대규모 u시티 사업이 줄줄이 대기업들의 잔치로 끝났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SW 저작권 공동소유 조치도 ‘휴지조각’이 됐다. 공공기관이나 정부부처가 대놓고 무시하면서 지키는 곳이 ‘이단아’로 취급받을 정도다. 이보다 먼저 시행한 SW분리 발주제도도 비슷한 궤적을 밟아왔다.

 사정이 이쯤되자 정부가 새로운 제도나 규칙을 내놓으면 시장에선 ‘야유’부터 쏟아진다. 장관까지 나서 강력한 실천의지를 드러내도 코웃음치기는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에서도 영(令)이 서지 않는 마당에 민간기업인들 오죽하랴.

 정부는 요즘 눈만 뜨면 ‘나라 밖 국격 제고’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나라 안 정부의 위상은 갈수록 곤두박질친다. 참 아이러니다. 보여주기식 선언적 정책만 앞세우고, 구체적인 실천이나 사후관리를 등한시 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다.

 2300년전 위앙처럼 정부의 말을 잘 들으면 ‘천금’이라도 줘야할까. 아니면 독재정권처럼 ‘군기확립의 달’이라도 선포해야 할까. 정부의 영이 이렇게 안 서면 정말 큰일이다.

장지영 IT서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