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세금저항과 가전 개별소비세

[데스크라인] 세금저항과 가전 개별소비세

 국가는 국방, 치안, 소방, 교육, 복지, 행정 등을 위해 세금을 부과한다.

 세금의 기원은 원시부족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 부족의 침입에 자기 부족을 지키고 부족 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족장이 필요했다. 부족 공동체는 ‘공동경비’란 명목으로 음식물과 기타 생산물 등을 추렴해 부족장에게 바쳤다. 전쟁도 자주 일어나고 부족 내 복잡한 일이 갈수록 많아지자 필요한 공동경비가 늘어났다. 부족장을 도와야 할 사람도 늘어나자 공동경비라는 명목 대신에 세금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부족이 국가 형태로 발전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비용도 늘어나면서 다양한 세수항목이 생겨났다. 그러나 과도한 세금은 국민생활을 피폐하게 해 반발을 샀다.

 세금의 역사는 곧 혁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금은 소극적 저항뿐만 아니라 반란·민란·혁명 같은 적극적 저항을 불렀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 로제타 스톤도 세금 반란의 산물이다. 기원전 200년 즈음에 이집트 지배층이었던 그리스인이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궁지에 몰린 왕이 밀린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돌에 새겨 증표로 남겼다. 바로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실마리가 된 로제타 스톤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된 윌리엄은 쫓겨난 제임스 2세 추종자들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돈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든 게 ‘창문세’였다. 집마다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좋은 집엔 창문도 많다는 데 착안한 일종의 재산세였다.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없앴다. 집을 지을 때 아예 창을 내지 않았다. 뒤따라 창문세를 도입했던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유럽의 오래된 집들엔 창문이 거의 없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개혁적 황제였지만 세금엔 무자비했다. 군대 키울 돈을 마련하느라 농노라도 세금 긁어 들일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고위 관료로 발탁했다. 그 결과 모자에 붙이는 ‘모자세’, 빨래하는 데 물리는 ‘세탁세’, 턱수염에 매기는 ‘수염세’까지 온갖 세금이 만들어졌다. 표트르가 죽은 뒤 농노 반란이 끊이지 않은 것도 지긋지긋한 세금 때문이었다.

 근대 헌법의 기원이 된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는 왕의 권리, 특히 징세권을 제한한 문서다. 존 왕이 기사들에게 ‘방패세’를 물렸다가 귀족들 반발에 밀려 앞으론 귀족 동의를 받아 세금을 거두겠다고 합의했다. 프랑스혁명은 루이 16세가 세금을 더 거두려고 삼부회를 소집한 게 발단이 됐다. 미국 독립전쟁도 영국 세금정책에 반발한 ‘보스턴 차 사건’에서 시작됐다. 동학혁명을 비롯한 조선 민란들도 대부분 가혹한 징세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했다.

 4월 1일부터 에너지 소비량이 큰 가전제품에 개별소비세가 부과된다. 대상 품목은 에어컨, 냉장고, 드럼세탁기, TV 네 가지다. 세법에서 정한 소비전력량이 기준치 이상인 제품이다. 그러나 개별소비세를 가전제품에 부과하면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며 구매심리도 크게 위축돼 내수 활성화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정부는 이렇게 걷은 세금을 고아원,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의 오래된 가전제품 교환 등에 쓸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진정성이 변하지 않기만 기대할 뿐이다.

  권상희 경제과학팀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