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희석됐으나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벤처라는 단어는 언급하기 꺼림칙한 뭔가가 있다. 사람들의 뇌리에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벤처투자로 손해를 봤으며 몇몇 부정직한 벤처인이 나쁜 이미지를 덧칠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닷컴 열풍으로 벤처에 올인했던 투자자들은 거품이 터진 후 막대한 손실을 봐야만 했다. 그 결과 지금도 벤처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황철주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벤처에 대해 투자와 지원을 포기한다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황 회장은 주성엔지니어링을 설립해 반도체 장비 및 태양전지 분야의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인이다. 51세인 지금도 벤처정신은 그대로라고 말할 정도로 항상 의욕이 넘친다.
그가 말하는 벤처는 미래와 동의어다. 황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현재를 지탱한다면 벤처는 미래를 지탱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현 경제의 근간이지만 상황에 안주하기 쉽다. 벤처는 다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모험정신이 가득한 벤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것의 황 회장의 지론이다.
되돌아보면 2000년 초반 반짝 했던 많은 벤처들이 명멸했지만 지금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감탄하는 IT강국이 된 것은 이때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이다. 도전은 위험도가 높지만 도전하지 않고서는 결실을 거둘 수 없다.
애플과 구글은 전형적인 벤처라고 할 수 있다. 두 회사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고 남보다 앞서서 시도하는 벤처정신의 전형이다.
일부에선 창의성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애플과 구글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황 회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우리 국민은 결코 창의성이 뒤지지 않는다. 다만 지난 40년간 수직계열화된 대기업 체제에 익숙해 왔기 때문이다. 모난돌이 정을 맞는다는 식의 수직계열화는 창의성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모든 기업은 벤처가 되어야 한다. 심지어 정부도 벤처가 되어야 한다. 정책적인 로드맵을 창출하고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부처 밥그릇 챙기기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서로 협조하고 조정할 때 국가 경쟁력은 높아진다.
벤처의 경쟁력은 실패로부터 나온다. 과거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다음으로 미뤄진 것이라는 사회적인 포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벤처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로 성장할 수 있다.
풍랑을 두려워 하지 않고 떠나야 만선을 기대할 수 있고 신대륙을 발견할 수도 있다. 사회와 산업전반에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벤처정신이 필요한 이유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항구에 묶여 있으라고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다.
권상희 경제과학팀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