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소비자를 아시나요

[데스크라인]소비자를 아시나요

 “소비자를 잘 아십니까. 달리 물어보겠습니다. ‘아이폰’을 제대로 써보셨나요.”

듣는 이에 따라 대답하기에 난감하거나 ‘무슨 이따위 질문을?’ 하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겠다. 단순하게는 손에 ‘아이폰’을 들었는지가 난감함과 웃어넘김을 가를 기준일 것이다. 복잡하게는 직업에 따라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해 매우 난감한 지경에 처할 이도 있겠다.

질문에 ‘아이폰’을 잇댄 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이른바 ‘아이폰 쇼크(shock)’에 빠져서다. 충격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이동전화 고객 유치를 위한) 과도한 마케팅 비용 때문에 이동통신서비스 연구개발(R&D) 투자가 저하되는” 상황으로부터 충격이 왔다고 보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인식이 있는가 하면, ‘소비자 소통과 공감 부재’로부터 원인을 찾는 사회학자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의 세상 보는 눈을 빌어 질문을 달리해보자. “혹시 ‘박순희’씨를 아십니까. 순희씨 친구 가운데 ‘오덕후’씨도 있는 모양이던데, 그도 아시나요”라고. 역시 듣는 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 차이가 큰 질문이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되 손에 ‘아이폰’을 들었는지가 대략 ‘난감하거나 가볍게 웃어넘길 편차’를 결정할 개연성이 크다. ‘박순희’는 무리지어 연예인을 좇는 극성 팬, 즉 ‘빠순이’를 순화해 쓰는 말이다. 박순희 친구 ‘오덕후’는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 판이다. 과거 사회 속 비주류였던 박순희와 오덕후는 손에 ‘아이폰’ 등을 든 채 인터넷과 현실 소비를 이끄는 ‘디지털 부머(digital boomer)’로서 지금 주류가 됐다. 이들은 인터넷 쇼핑몰 지(G)마켓에서 1000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택배비 2500원을 내고는 한다. 이런 소비 행태가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당신 손에는 ‘아이폰’이 없고 그들과 소통·공감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황상민 교수는 “우리는 정작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집단들이 누구이며, 또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어떻게 (‘웹 2.0’과 같은) 참여형 서비스들을 바꾸어 나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그 이유를 “한국의 통신 및 인터넷 산업이 기술 중심의 인터넷 개발에 초점을 두다 보니 정작 이용자들이 누구이며 이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핵심 문제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어냈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방송통신 정책 기획·입안자의 인식처럼 R&D 투자 의지 저하가 한국에서 ‘아이폰’이나 ‘닌텐도 DS’ 같은 제품을 만들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소비자를 아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와 트렌더스날 그룹이 ‘트렌드 코리아 2010’에서 예측했듯 앞으로 “소비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능력과 권한을 소비자에게 부여해주는 제품이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 것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제품을 말한다. 호들갑(아이폰 쇼크) 떨며 “빨리 ‘아이폰’ 만들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마음을 다해 소비자를 위하는 자세’부터 갖추라.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