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솔로몬·신라상호·제일·토마토저축은행 등에 이어 현대스위스와 프라임저축은행도 최근 프로젝트 준비에 나서는 등 중대형 저축은행이 대부분 차세대 프로젝트로 들썩이고 있다.
이는 10여년 전 증권업계의 원장이관과 비슷한 양상이다. 당시 증권사들은 한국증권전산(현 코스콤)으로부터 원장을 이관하면서 잇달아 자체 시스템을 구축했다. 저축은행들도 저축은행중앙회에서 독립해 자체 시스템 구축을 검토하거나 그동안 패키지 기반의 자체 시스템을 운영해온 업체들이 대규모 업그레이드 작업을 추진하면서 차세대 시스템 구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기존 시스템의 노후화와 함께 상품 개발 적시성 부족, 유지보수 관리 어려움, 패키지 한계 등의 문제에 봉착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차세대 시스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의 통합금융정보시스템(IFIS)을 이용하는 저축은행들을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독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점도 차세대 ‘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축은행업계를 둘러싼 차세대 시스템 관련 추진 동향과 함께 성공적인 시스템 구축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저축은행, 왜 차세대가 필요한가=현재 저축은행업계도 다른 금융업종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것이 최대 강점이었는데, 최근 저축은행들의 평균금리는 시중은행과 비교했을 때 0.5%P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 스마트폰 등 다양한 채널 지원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라 저축은행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기에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IT 인프라 환경에서는 이러한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저축은행은 104개다. 이 중 65개 기관이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저축은행중앙회의 IFIS를 이용하고 있다. 나머지 39개 기관은 독자 정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IT 인프라와 차세대 시스템 대응전략을 중심으로 저축은행을 나눠보면 △현 자체 정보 시스템을 차세대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경우 △저축은행중앙회의 IFIS에서 벗어나 자체 시스템 구축하는 경우 △IFIS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로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이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는 경우다.
현재 솔로몬·제일·신라상호 세 개 저축은행이 차세대 시스템을 한창 구축 중이며, 현대스위스·프라임 두 군데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 저축은행은 모두 자산규모가 1조원 이상인 대형 저축은행이다.
이처럼 상위 저축은행들이 차세대 시스템 구축 대열에 적극 합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품 개발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본시장법 실시로 금융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는 바로 신규 금융상품을 경쟁사보다 빨리 출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시중은행들의 경우 신상품 개발에 소요되는 기간이 적게는 평균 7일에서 많게는 14일 정도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경우 적게는 1∼2개월, 많게는 3개월까지 걸린다. 그나마 자체 시스템을 운영 중인 저축은행들이 이 정도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상품 출시 기간이 한 달 정도 차이가 난다면, 시장지배력 측면에서 배 이상의 차이로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신속한 금융상품 출시역량을 갖추는 것과 함께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차세대 프로젝트를 검토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저축은행업계는 재무 관련 기초 데이터를 처리하는 정보 시스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엑셀 등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등 IT 인프라 전반에 걸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IFIS를 이용하는 저축은행은 자사의 경영전략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문제 외에도 영업전략이나 노하우 등이 경쟁사에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이형로 투이컨설팅 이사는 “자체 시스템이든, IFIS든 많은 저축은행이 데이터 추적성을 확보하기 힘든 기존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비즈니스 요건과 전략에 부합하는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차세대 프로젝트를 많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모 적어도 시중은행과 업무 개발 범위 유사=현재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대형 저축은행들은 주로 단기간에 선도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빅뱅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업 규모는 적게는 50억원에서 많게는 200억원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적은 예산이지만 그렇다고 시스템 개발 범위가 좁은 것은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저축은행업계의 차세대 시스템 개발 범위는 시중은행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단지 은행보다 사용자 규모나 주요 업무 기능의 복잡성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이형로 이사는 “시중은행과 개발 범위는 비슷하지만 깊이에 차이가 있다”며 “하지만 시중은행들의 차세대 프로젝트 특징이었던 상품 팩토리 구성 등은 저축은행 역시 중요한 부분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창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 중인 솔로몬저축은행은 SK C&C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개발을 진행 중이며, 내년 2월 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상품 팩토리와 함께 소액 신용대출 고도화, 위험관리 강화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제일저축은행은 누리솔루션이 자체 개발한 프레임워크(누리콤파스)를 기반으로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제일저축은행 차세대 시스템은 리눅스 기반에 하드웨어 환경을 블레이드서버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저축은행들과 차별화된다.
이들보다 개발 범위가 좁은 신라저축은행은 한국HP를 사업자로 선정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저축은행 모두 계정계·정보계·대외계·인터넷뱅킹·콜센터 등을 재구축하거나 새로 구축할 예정이며, 상품 팩토리도 개발할 계획이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프라임저축은행도 앞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다른 저축은행들과 개발 범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은 최근 투이컨설팅의 정보전략계획(ISP) 컨설팅을 마치고 차세대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일정 및 추진 범위 등을 논의하고 있다. 프라임저축은행은 최근 한국IBM과 함께 ISP 컨설팅에 착수한 상황이라 차세대사업 착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IT 거버넌스·데이터 관리체계 수립 필요=현재 저축은행업계가 차세대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IT조직의 역량이다. 지금까지 저축은행업계는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대규모 백빙방식의 IT 프로젝트가 거의 없었다. IT조직도 최소한의 운용 인력 위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저축은행 중 임직원 100명 이하인 저축은행이 88%나 되고, 이들 기업의 IT인력은 고작 2∼5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현업의 요구사항을 체계적으로 반영하기가 힘들고, 장기간 프로젝트를 잘 관리해나갈 여력도 부족한 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이 차세대사업을 추진하면서 IT 거버넌스 체계 수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인력에 비해 업무량이 절대적으로 많다 보니 업무 분장이나 역할과 책임(R&R)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업무 효율화도 사전에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 관리도 시중은행과 같은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데이터 관리 원칙이 없고, 별도의 전담조직도 없다. 전사 관점의 데이터 일관성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없고 중복 관리에 따른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저축은행이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전사 데이터에 대한 단일 화면(싱글 뷰)을 제공하고 데이터 관리 프로세스를 정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저축업계의 한 전문가는 “저축은행들이 적은 예산으로 차세대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앞서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금융회사들의 여신·상품 프로세스 등을 도입해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수합병이 활발한 저축은행업계에서 인수한 법인을 합병하지 않고 별도법인으로 운영하는 관행도 차세대 시스템 구축 시 고려해야 할 요인 중 하나다. 대부분의 대형 저축은행은 저축은행을 인수한 다음에도 이를 합병하지 않고 별도법인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에서는 별도법인일 경우 법인별로 모든 시스템이 분리 운영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축은행이 하나의 통합서버에 여러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차세대 시스템 구축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저축은행이라면 이러한 부분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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