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철학이 밥먹여 줍니다.

[데스크라인] 철학이 밥먹여 줍니다.

 촛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구는 발명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스티브 잡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사업은 형태(form)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sight)에서 비롯된다. 곧 철학이 근간이다.

철학을 비즈니스로 연결해 성공한 기업이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닷컴이다. 이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간(B2B) 전자상거래 업체다. 지난 1999년 설립돼 지난해 635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무형의 상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선 이 회사의 철학은 뭘까. 바로 ‘기업이 비즈니스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해외진출, 판로개척 등 제조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경영철학이 모델이다. 이런 철학은 투자의 귀재란 별명을 가진 소로스도 베팅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이 새로운 궤적을 그린다. 1990년대 후반 배우 김혜수씨가 차를 타고 가다 ‘우리집’ 하면 집에 연결되고, 안성기씨가 ‘본부 응답하라’하면 자동으로 전화가 걸리던 광고는 이젠 ‘딴 나라 이야기’가 됐다. 우리나라 휴대폰 인프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휴대폰 시장과 기술격차를 줄여왔다. 크기는 무전기에서 담뱃갑에 가깝게 초경량화·소형화 됐다. 폴더에서 터치로, LCD에서 AMOLED로 진화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2위에 오른 것은 결코 운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사람의 뇌에 해당하는 운용체계(OS)를 휴대폰에 탑재, 아키텍처 혁신으로 애플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아직도 부족해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기능성(functionality)에만 집착한다. 고객에게 유용한 기능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구글과 애플의 공통점은 ‘버림’이 아닐까 싶다. 구글이 미국에서 야후와 MSN을 제치고 최고의 검색엔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픈 생태계’를 모토로 삼았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마켓 역시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개방성에 있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다른 매출이나 기업의 수익을 위한 것들은 부가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기능을 단순화해 유용성을 극대화한 애플 아이폰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십수년 전만 해도 스티브 잡스는 실패한 CEO의 전형이었다. 애플에서도 쫓겨난 상태였다. 지금은 어떤가. 구매자들은 그가 다음 키노트에서 애플 로고가 새겨진 돌멩이를 들고 나와 ‘아이폰5’라고 소개하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열 태세다. 아이패드 발표장에서 잡스는 “애플은 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껌 딱지 하나를 팔아도 문화적인 지형도 위에서 맥락을 따지고 고민한다. 애플의 철학이다.

우리 휴대폰 제조사들도 철학을 담아야 한다. 삼성스러움이 있어야 하고 LG만의 색깔, 팬택의 향이 있어야 한다. 국산 스마트폰이 아이폰의 안방인 미국 시장에서 호령하려면 현지 이통사들의 전략폰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핵심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저 찍어내기에 급급한 휴대폰이 되어선 안 된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거기에 맞는 혁신이 이어져야 한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과 서비스라도 고객의 반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철학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