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월드컵과 ’비욘드(beyond)’ 애플

 11일 개막한 ‘2010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었다. 경기 초반이지만 둥근 축구공만큼이나 이변도 속출한다. 아시아 국가의 선전이 돋보인다. FIFA 순위 47위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13위 그리스를 완파한 데 이어 45위 일본도 19위 카메룬을 물리쳤다. 북한도 힘을 보탰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에 2대1로 석패했지만 경기 내용은 위협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언론과 축구팬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돌풍에 가깝다”는 찬사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아시아는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다. 축구 강호 유럽·남미와 비교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대세였다. 기본 체력도 떨어질 뿐더러 스타 선수가 없고 개인기도 크게 뒤처진다는 평가였다. 전술·전략 등 경기 운영도 아직 유럽을 더 배워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랬던 아시아 축구가 세계가 주목할 만큼 성장했다.

 여러 배경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게임규칙’을 스스로 만든 게 주효했다는 생각이다. 무작정 유럽을 따라 배우기 보다는 아시아 축구의 강점을 살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다소 처지는 체력을 정신력으로 보완했다. 유럽 선수의 현란한 개인기에 맞서 탄탄한 조직력에 승부수를 던졌다. 경기 운영에서도 장신을 활용한 세트 플레이보다는 빠른 속도와 팀 플레이를 십분 활용했다. 유럽 축구와 비교해 못하는 걸 보완하기 보다 잘하는 쪽에 더욱 집중했다. 잘했던 분야니 그만큼 자신감도 충만했다. 애당초 체격 조건과 축구 역사, 선수 주특기, 경기 운영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우리와 다른 유럽을 똑같은 방식으로 따라잡기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유럽 따라 배우기에 그쳤다면 비슷해 질지는 몰라도 결코 유럽을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장을 놓고 벌이는 기업끼리 경쟁도 마찬가지다. 최근 IT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애플’이다. 아이팟·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까지 애플 제품은 나오는 족족 찬사가 쏟아진다. 애플은 이 시대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추앙받는다.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배우자며 온통 애플 이야기뿐이다. ‘애플 쇼크’에 이은 ‘애플 신드롬’이 따로 없다. 우스갯소리로 ‘애플 사대주의’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쟁 기업은 애플 피로증, 나아가 애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형국이다.

 애플은 누가 뭐래도 혁신 기업이다. 혁신성을 따지고 보면 ‘애플식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품 경쟁력 못지않게 콘텐츠·애플리케이션을 앞세워 새판을 짰다. 사업자가 중심이던 통신 지형을 소비자와 제조업체 중심으로 바꾸었다. ‘생태계(에코 시스템)’라는 새 개념을 제시했다. 한 마디로 성공 스토리는 애플식 규칙 때문에 가능했다.

 애플을 넘으려면 시장을 바꿀 새 게임 규칙이 필요하다. ‘애플 따라잡기’에 올인한다면 비슷해 질지는 몰라도 결코 애플을 넘을 수 없다. 게임 규칙을 바꾸려면 애플보다는 우리 자신과 소비자를 먼저 쳐다봐야 한다. 강점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게 어떤 건지, 애플 규칙에 익숙한 소비자가 다음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감이 붙는다. 자신감이 붙으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마치 월드컵에서 강호 유럽을 제치고 돌풍을 일으키는 아시아 국가처럼 말이다.

  강병준 생활가전팀장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