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웃나라 일본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의아해하는 것이 있다. 우측주행이니 좌측주행이니 하는 눈에 보이는 정해진 법규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상향등(하이빔) 점등‘의 숨어있는 의미 차이다.
상향등은 어두운 거리에서 주위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두 나라 모두 운전법규에는 정해 놓지 않았지만 수신호를 대신하기도 한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좌회전 차량과 직진차량이 맞닥뜨렸을 때 흔히 의사전달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상향등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는 한국과 일본 운전자가 정반대다. 우리나라 운전자는 정면에서 오는 차가 상향등을 켜면 ‘먼저 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운전자들은 ‘먼저 가라’는 양보의 의미로 인식해 그대로 주행한다.
우리나라 운전자가 일본 교차로에서 상향등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대로 주행하면 사고를 부를 수 있다. 물론 상대 차량의 상향등 신호를 보고 멈추면, 서로 멀뚱멀뚱 기다리는 우스운 상황을 겪게 된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두 운전자는 ‘뭐하자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동시에 갖게 될 것이다.
요즘 국내 IT업계에서 핵심 이슈로 떠오른 ‘망 중립성’ 논쟁이 이같은 상황과 비슷하다. 사실 망중립성에 대한 개념은 지난 10여년 미국에서 공방이 이어졌으며, 명확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슈로 부각됐다. 하지만 개념이 불명확하다 보니, 이행당사자의 다른 측에서 이 문제를 끄집어내면 정서적 차이에서 온 ‘상향등’의 서로 다른 의미처럼 ‘의도가 뭐지?’’라는 의구심부터 드는 것이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망중립성 논란은 마치 포털과 통신사업자간 대결 구도로 해석되면서 갈등으로 번질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오해의 골이 깊어져 ICT생태계 조성 및 재도약에 암운이 드리울까 우려된다.
분명한 것은 망중립성은 국내 포털과 국내 통신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케이블사업자는 물론이고, VoIP사업자, 단말기제조사까지 모든 ICT 구성원과 관련이 있다.
특히 논쟁의 주체에 빠져 있지만, 통신사 망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P2P 음성사업자들은 망중립성 논란의 딜레마기도 하다. 실제로 관련업계 조사에 따르면 2%의 헤비유저가 전체 일반 사용자 50%가 쓰는 트래픽을 점유하며, 2% 헤비유저는 불법 다운로드서비스를 사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망중립성이 국내 포털이나 통신업계가 아니라, 구글·애플 등 다국적기업의 이해와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를 주도해온 미국의 힘은 ‘아메리카표준=글로벌표준’이란 인식을 당연케 하면서 세계는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이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이제 ICT강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는 과거의 따라하기 식이 아니라, 우리만의 발전과정과 목표가 있다. 한국적 망 중립성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ICT산업 생태계의 주체들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선구조를 만들어, 한국 ICT산업의 재도약을 같이 준비해야 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