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양육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왔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보다, 남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더 큰 인상을 남기곤 한다. 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아빠와 어린 아들이 갓난아이를 키우는 ‘아기와 나’를 비롯하여 많은 남성 양육만화들이 있다. 이번에는 요 근래 나온 신선한 두 편의 신작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먼저 살펴볼 만화는 ‘토끼 드롭스’다. 외할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몇 년 만에 고향집에 내려온 서른 살의 노총각인 다이키치. 하지만 79세의 외할아버지에게 숨겨놓은 여섯 살 난 어린 딸 린이 있었다는 사실에 장례식장은 난장판이 됐다. 엄마 되는 사람은 흔적조차 없고 린의 거취에 대해 서로 미루려고만 하는 친척들의 이기적인 태도에 다이키치는 폭발하고 만다. ‘린,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그리고 시작된 서른 살 노총각과 외할아버지의 딸인 여섯 살 여자 아이의 동거생활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를 키워야하는 서른 살 노총각, 그리고 비밀에 휩싸인 린의 출생. 이야기는 양육만화와 린의 비밀을 찾아가는 묘한 스릴러가 균형을 이뤄가며 이야기의 힘을 쌓아간다. 또한, 사회인으로 아이기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양육에 대한 사회적 문제들, 아이들의 어른에 대한 감정,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가족 간의 유대와 애정 등등 평상시에는 잊고 살았던 일상의 소중함을 잘 짚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은 ‘플랫(flat)’이다. 가정실습에서 과자 만드는 것 외에는 모든 것에 시니컬한 남자 고등학생과 맞벌이 부모들과 생활하면서 너무나 어른스러워진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플랫(flat)은 작가의 첫 단행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통해 가족애를 선보이는, 잔잔하고 담담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헤이스케와 사촌동생 아키의 소소한 커뮤니케이션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인데,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담담함’속에 담으려 하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독자에게 전달되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 이 만화를 읽게 되는 포인트다. 굉장히 무신경한 고등학생인 헤이스케와, 모든 것을 참아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꼬마 아키와의 관계는 양육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로서 마음을 묘하게 위로해주는 힘이 느껴진다.
조금은 담담하지만, 잔잔하게 다가오는 감동이 일품인 두 작품은 남성이 양육을 하는 소재를 넘어서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까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노동이 강요되는 일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을 이겨내는 힘은, 아이와 관계를 맺으면서 얻어지는 감정의 충족감과 행복감 때문일 것이다. 아이란 막연히 어른이 돌봐야만 하는 존재만이 아니라, 어른과 관계를 맺어가며 많은 위안과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 바로 두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아이 키우기에 대한 행복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아직 아이를 키워보지 못한 사람이거나, 혹은 이미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일지라도 만화에서 펼쳐지는 일상이 선사하는 양육의 기쁨을 느껴보길 권한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 bride100@par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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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건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