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LG전자, 서두르지 말고 제대로 대응하라

서두르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마라톤에서도 페이스오버를 하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중도포기를 하거나 순위권에서 멀어진다. 아마 골퍼가 거리 욕심에 힘주어 스윙하다 `뒤땅`을 치는 것과 같다.

LG휴대폰이 고개를 숙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흑자를 냈건만 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어닝 쇼크` 수준이다. 변화의 길목을 지키지 못한 탓이다. 글로벌 이동통신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릴 때 일반 휴대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도 원인이다.

전문가들의 호들갑이 이어진다. 연구개발을 소홀히 한 채 생존에 급급한 `2등 전략`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글로벌 3위 기업이 안방에서조차 아이폰에 굴욕을 당했으니 이런 소리가 나올 만하다.

변명을 해보자. 올해는 휴대폰이 세상에 등장한지 28년째다. 우리나라에서는 88서울올림픽 개막 직전인 1988년 7월 1일 모토로라 `다이나택`이 첫 포문을 열었다. 당시 LG전자는 휴대폰 제조는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CDMA 휴대폰 `LDP-200`을 내놓은 것이 처음이다. LG휴대폰은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다. 그러나 차근차근 기반을 닦고 역량을 키워 2008년 시장점유율 9.1%로 소니에릭슨을 제치로 글로벌 3위에 올라섰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당당했으며, 노키아와 삼성의 기세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2004년 봄 LG 트윈타워에서 MC사업본부 단말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안승권 사장(당시 부사장)은 당시 LG전자 김쌍수 CEO와 박문화 MC사업본부장으로부터 놀라운 약속을 얻어냈다. `혁신제품(Innovative Product)`을 만드는 대신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예산, 제품 컨셉트에 대한 중간보고는 모두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보고체계가 중시되는 대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특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틀에 제조기술을 맞춰 진행했다는 점에서 당시 휴대폰 업계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안 사장의 승부욕과 고집스러움이 혼합됐다. 비밀리에 시작된 `초콜릿폰`은 이후 LG휴대폰의 역사가 됐다. 글로벌 메이저로 도약하는 기폭제였다.

휴대폰 업계에 `1·3딜레마 법칙`이 있다. 1억대 판매량을 넘어섰던 모토로라가 후속작 부진으로 추락했다. 3억대를 돌파한 노키아 역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LG전자도 지난해 1억대를 넘었다. 이른바 `1억대 성장통`을 겪고 있다.

구본무 LG회장은 지난달 컨센서스 미팅에서 “주눅 들거나 늦었다고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 대응하라”고 임직원에게 당부했다.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이게 `LG다움`이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 LG휴대폰 적자 전환은 그래서 뼛속까지 아프다. 스마트폰 시장이 만들어진 지 불과 2년 밖에 안됐다. 이제 스타트라인에서 총성소리를 듣고 두어 걸음 나갔을 뿐이다. 스마트폰 전쟁이 마라톤이라면 LG는 순위권에 들기 위해 신발 끈부터 고쳐 매야 한다.

LG전자에게 있어 지금은 위기에 대처하는 시간이다. 서두르지 말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초콜릿폰과 같은 혁신제품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LG전자의 책무다.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지 말라.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