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청소년 만화가 있다. 만화야 뭐 청소년들이나 보는 거 아니야? 맞다. 어린이도, 청소년들도, 성인도 본다. 그래서 청소년이 주인공인 만화가 일정한 장르를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런 장르를 `학원만화`라고 부른다. 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이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격투물이 많다.
어느 쪽이나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일본의 학원만화를 보면 부활동, 축제, 스포츠 등 공부와 상관없는 일들이 많이 나오는데, 마치 현실의 고민은 탈색된 듯 보였다. 하지만, 후루야 미노루는 끝없이 청소년들의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은 거대한 호수같은 나라다. 강물처럼 흐르지 않고, 가뭄에도 수량의 변화가 없으며, 바다처럼 파도가 있는 것도 아닌 안정적인 거대 호수. 무언가를 바꿔보겠다는 열망은 전공투 이후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아있고, 돈에 대한 욕망도 버블붕괴 이후 자포자기 상태. 많은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의 삶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변화 없는 시대의 건조한 삶을 후루야 미노루는 집요하게 담아낸다. `렛츠고 이나중탁구부`, `크레이지군단`, `그린힐`, `두더지`, `시가테라`, `심해어`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장된 오버 액션의 웃음을 전면에 내세운 부조리 개그 만화 렛츠고 이나중탁구부를 빼면, 크레이지군단 등 다른 작품들은 모두 변화 없는 시대에 절망하는 청춘들이 주인공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낮비`도 마찬가지. 후루야 미노루의 전작들에 나온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평범한 남자 주인공`과 `빼어나게 예쁜, 하지만 독특한 정서를 갖고 있는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더 희망 없는, 아니 절망의 캐릭터들이 보충된다. 그리고 이들은 무언가를 욕망한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닌 그 욕망은 이들을 살게 하는 구원이다. 무기수의 독방에 비추는 손바닥만한 햇살이 주는 구원이다. 작품에 따라 이 구원을 붙들기도 하고, 놓기도 한다.
후루야 미노루를 보면서 늘 부러웠는데, 최규석이 청소년들의 삶을 붙들었다. 주인공은 `울기엔 좀 애매한`이다. 총 125페이지의 수채화로 완성했다. 로맨스, 격투, 스포츠 대신 비루한 현실이 있다.
작품의 배경은 만화과를 준비하는 입시미술학원이다.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원빈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만화과를 가고 싶어하지만, 입시미술학원에 다닐 돈이 없다. 어려운 집안형편을 알고 있는 원빈은 반쯤 만화를 포기했는데, 엄마가 미술학원에 가라고 한다. 도입부분은 왠지 어려움을 이기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쯤으로 읽힌다. 그러나 만화는 가공된 인간승리를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픽션이지만, 논픽션이기도 하다. 작가 최규석이 대학 만화과를 나와 입시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지낸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얼리스트 최규석은 공간 하나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원빈과 어머니의 시퀀스가 끝나고, 입시미술학원 에피소드가 시작되는 21쪽. 가방을 팔에 걸친 여고생들, 건물의 어수선한 간판, 포장마차, 각종 전단까지. 2010년, 과장되지 않은 한국의 모습이다. 과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적이기 때문에 비루하다. 낭만 대신 현실을 택한 대가다.
작가는 자신의 만화에 대해 “내가 목격한 모습들을 최대한 그 온도 그대로 담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목이 `울기엔 좀 애매한`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 상황인지 몰라도, 한국만화 역사상 드물게 청소년들의 삶이 리얼하게 그려진 만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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