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느껴지기 쉽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의 힘이라기보다 좀 더 기본적인 인간 심리의 속성이다. 중요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셈이다.
어제의 일들을 열심히 기록해 기억을 남기는 행위는 단지 과거 이야기의 보존이 아니라 오늘의 사고를 좌우하기 위한 잣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직시하고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내일을 향한다는 규범적 차원 이전에, 좀 더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무엇을 역사라는 기록으로 남겨야할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의 미래를 여는 역사: 만화로 보는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는 2005년 출간된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의 만화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본은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뿌리 찾기와 제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한국은 그런 허탈한 시도에 의연히 대응하는 와중에서도 일각에서는 환단고기류의 한민족 패권신화가 슬금슬금 퍼지며 서로에 대한 혐오감정과 우월감이 교차하는 시기를 그린다.
그 와중에, 정말로 한중일이 함께 과거의 관계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협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각 나라의 진취적 역사가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낸 3국 근현대사 결과물이 바로 공동역사교과서다. 만들어진 이후 많은 학교에서 인기리에 보조교재로 채택됐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으나, 공동팀의 활동은 최근 성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두번째 교과서도 발표하게 되었을 정도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만화판 공동역사교과서는 첫 번째로 나왔던 교과서가 청소년용으로 맞춰져있음을 감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결과물이다. 세 나라가 함께하는 이야기라면 무엇을 역사로 남길 것인가의 기로에서 결국 서로의 외교적 교류, 전쟁 같은 갈등, 문화 교류의 영향과 각각의 풍속, 서로의 서로에 대한 생각 등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쪽을 선택했다. 어린이용으로 재작업하면서도 그런 핵심을 거의 희석하지 않았다.
만화는 세 나라의 아이들이 시공간을 넘는 신비한 동물과 함께 목격하며 다니는 형식이다. 그 속에서 서로 부끄럽고 미진했던 모습들을 솔직하게 함께 살펴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이해와 협력을 위한 희망의 단초 역시 발견한다.
특히 근대사 속에서 여성, 농민, 천민, 전쟁에 강제 동원된 남녀 등 상대적 약자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조명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 모든 것이 귀엽고 간명한 캐릭터, 명료하게 요약된 지도, 가끔 끼어드는 실제 사료의 이미지 등이 합쳐지며 감정적 과장 없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전달된다.
논쟁보다는 역사를 받아들이는 단위와 방식을 고민하는 편이 더 진취적이다. 이 만화는 동아시아라는 당장 오늘날 더욱 중요한 지역단위를 중심에 놓고, 그 안에 담긴 관계와 응어리를 함께 풀어나감으로써 단지 과거를 논하기보다 오늘날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수단으로 삼는다. 단순히 외교적으로 과거사 사죄를 요구하고 뭔가 적당한 수사법을 찾아 읽어주는 놀이를 수십년 째 반복하지 말고 함께 과거사를 써나가고 현재에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나가는 접근법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되짚어가며 나라 안에서 다시 상대적 약자들에게 또 다른 식민성을 발휘한 모습도 발견하고 함께 반성하는 것,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사람 대 사람의 할 짓 못할 짓을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스스로의 역사의식이나 상식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차근차근 어린이용 만화판 공동역사교과서부터 읽어보는 일도 의미가 크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capcold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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