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에는 간단하고 멋지지만 잘못된 해결책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L. 멘켄이 한 말이다. FBI가 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보고서에 인용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FBI는 학교 총기난사 발생은 다양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대책 마련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인용했다.
이 문구는 2010년 우리나라 게임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문제는 매우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대책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셧다운제 등 예외 없는 일괄 규제가 포함된 청소년보호법(이하 청보법) 개정안으로 풀어나가려 한다.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 등 콘텐츠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잣대를 들이대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청보법 개정안은 정책적으로도 허점이 많을 뿐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청보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위헌 가능성 높은 반(反) 산업법`이다.
◇과잉금지 원칙 위반하고 평등권도 침해=청보법 개정안 가운데 가장 논란을 빚고 있는 대목은 심야 시간 온라인게임 이용금지, 이른바 셧다운제다. 청소년이라면 예외 없이 심야 시간에 온라인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조항이다.
김기중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는 “청보법 개정안은 청소년의 개인 권리를 무시한 전근대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며 “법률적으로 과잉금지 원칙 위반과 평등권 침해라는 위헌 소지가 매우 짙다”라고 밝혔다. 과잉금지 원칙 위반은 `입법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다.
안경봉 국민대 법대 교수는 “비록 청소년이라 해도 국가가 국민의 사생활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지는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며 “국민의 사생활을 규율하려는 법제도는 대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평등권 침해도 심각하다. 청보법 개정안은 오로지 `한국`의 `온라인게임`만 규제한다. 비디오게임이나 PC게임, 모바일게임 등 다른 플랫폼과 비교할 때 형평성을 상실했다. 특히 최근 스마트폰의 열풍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는 웹게임이나 국경 없는 인터넷을 타고 들어오는 외국 온라인게임에는 속수무책이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청보법 개정안은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적정한 수단이 아니고, 피해의 최소화 수단도 아니며, 법익의 균형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게임 정책은 게임법이 적합=위헌 소지는 물론 청보법 개정안은 법령 자체의 적합성의 문제점도 제기된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유해매체나 청소년유해업소 등을 규제하는 목적인데, 온라인게임 자체가 유해성을 갖는 대상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인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게임중독은 의학적 치료와 교육적 예방이 필요한 일종의 정신병”이라며 “청보법 개정안은 중독의 원인을 이용자가 아닌 게임, 그 자체에서 찾는 논리적 오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청보법 개정안에 기성세대가 찬성하는 이유는 자기 가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게임이라는 병균이 들어와 자녀들을 오염시켰다고 생각하는 소시민의 허위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업계 자율 규제가 가장 바람직하며 굳이 법이 필요하다면 청보법 개정안이 아닌 게임산업법에서 게임 규제를 전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본지 미래기술연구센터가 조사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관련 게임 규제는 게임산업법에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52.9%에 달했다. 청보법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29.4%에 그쳤다.
<표> 청소년 게임 규제를 게임법에서 다뤄야 하는 이유
1. 게임법이 게임을 다루는 전문법률이므로 30%
2. 게임은 콘텐츠에 맞는 법이 필요하므로 30%
3. 게임을 청보법에서 다루면 형평성에 어긋나므로 10%
4. 기타 30%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