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세상]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 역사의 문제-`애총`](https://img.etnews.com/photonews/1010/041634_20101007150106_447_0001.jpg)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스릴러 작가 한혜연의 신작 `애총`이 지난 8월 4권으로 완간됐다.
대도시 외곽 Y시의 타운하우스. 김태헌은 이웃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퇴근 후 이웃집에 도착해 벨을 누르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뒤뜰로 가 창문으로 집안을 보니, 쓰러진 사람의 발이 보인다. 창문을 깨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이웃 가족들은 모두 죽어있다.
깜짝 놀라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희미하게 울리는 아내의 벨소리를 따라 2층에 올라가니, 배에 상처를 입은 아내가 쓰러져있다. 모든 주부들이 선망하는 타운하우스에서 일가족 살해와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아기를 꺼내간 엽기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애총 1장 `학살의 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1권의 시작은 1장이 아니다. 프롤로그가 있다.
1936년 Y읍에서 신자의 아이들을 모아 생매장한 사이비종교 백백교의 세 번째 학살사건이 발생한다. 1976년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불이 난다. 남매 중 누나인 동주는 살고, 동민은 불에 타 죽는다. 사건 이후 동주에게 불에 타 죽은 동생 동민이 보인다.
어느 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간 동주와 엄마. 천도제를 나가던 무당은 동주를 보더니, 동민을 부른다. 그리고 “내 누이를 놓아주라”고 말한다. 죽은 동생이 떠나갈 때 동주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본다. 무당이 묻는다. “지금…네 동생이 보이는 게냐?” 동주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무당은 동주의 귀에 대고 뭐라 말한다. 집단 생매장 사건이 벌어진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순덕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볼 수 있는 무당이 되어 동주를 만난 것이다.
세월이 흐른 뒤 건설회사사장이 된 순덕과 그를 돕는 동주는 학살사건이 벌어진 Y읍(지금은 Y시)의 현장에 타운하우스를 짓는다. 그리고 그 타운하우스에서 엽기적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살인사건이 그냥 살인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유다.
만화는 형사를 등장시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다. 그런데 사건담당 형사의 부인이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집으로 이사 오겠다고 입주신청을 한다. 사건담당 형사와 부인도 뭔가에 연결돼 있다.
만화를 보다 보면, 타운하우스 회장인 순덕과 그를 돕는 동주에게 보이는 `귀신`이 만화에 나오는 이들과 뭔가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은 `귀신`은 살아있는 자들의 비밀, 누군가의 죽음이다.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그리고 숨겨진 죽음의 비밀. 그리고 제목인 `애총` 즉, 아기무덤. 판은 깔렸다. 문제는 이야기를 어떻게 흥미롭게 펼쳐나가느냐에 있다.
한혜연은 과하지 않게, 시각적 장치에 의지하지 않고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낸다. 많은 비밀이 4권에서 풀린다. 1~3권까지 얽힌 역사적 사실과 살인 사건 당사자들의 문제, 그리고 또 다른 살인사건이 얽히는데, 살인의 동기가 아주 일상적 사건인 아파트 층간소음이다.
다소 충격적인 살인사건의 원인이 그리 충격적이지 않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아파트 층간소음 따위의 일상적 충돌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미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4권은 마무리 모드다. 다소 급히 풀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찜찜한 구석 없이 깨끗하게 해결된다.
애총은 엽기적 살인사건, 숨겨진 원한, 숨겨진 원한을 만들어낸 우리의 일상적 풍토, 귀신을 보는 영매, 귀신들의 사연, 특정한 공간(그럴 수밖에 없는 공간이며 동시에 때마침 그곳인)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 역사적 문제가 무게 중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 균형 잡힌 작품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