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주민증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주민등록증에 전자칩(스마트IC)을 내장하고 이 칩에 개인정보를 담을 수 있도록 한 내용의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면서 진보 시민단체가 반대진영에 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1995년 · 2005년 두차례나 전자주민증 도입을 추진했으나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행안부가 오는 25일 주최하는 세 번째 전자주민증 공청회 장에서 또 한 번의 격론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에 대해 두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주민등록증에 수록하는 임의 수록 사항을 `대통령으로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둔 탓에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 주민등록증에 수록하거나 표시하는 정보를 제한 없이 전자적으로 전자칩에 수록함으로써 오히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시민단체의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는 아니다. 정부 역시 시민단체의 지적을 수용, 개인정보 수록 항목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안을 손질해왔다. 시민단체 덕분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이러한 입장은 10년 전 전자주민증 도입 반대 논리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데 아쉬움이 있다. `전자칩에 저장한 개인정보는 유출의 우려가 높다`는 옛 이론으로 전자주민증 도입을 반대, 최근 보안 기술 환경을 배제하는 인상이 짙어서다.
3년 전 정부가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가입의 일환으로 전자여권 도입을 추진할 때도 시민단체는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 도입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당시 외교통상부가 주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패널은 전자태그(RFID)와 전자칩이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전자태그 해킹 사고를 전자칩 해킹 사고로 규정한 채 전자여권 보안의 취약성을 지적, 실소를 자아냈다. 물론 시민단체 내 전문가가 없다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보안 기술이 10년 전에 비해 급속히 발전한 덕분에 전자칩은 오늘날 가장 안전한 저장매체로 인정받고 있다. 전자주민증을 분실해도 타인이 개인정보를 빼내기 힘들 뿐 더러 설령 입수해도 사용할 수가 없다. 주요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전자칩에 저장하기 때문에 전자주민증은 본인 이외 타인에게는 단순한 플라스틱 카드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자주민증은 주민등록증 위변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해 금융 거래 시 주민등록증이 이제껏 하지 못한 본인 신원확인용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장점들이 있다. 또 매년 400~500건에 달하는 주민등록증 위변조 범죄를 막기 위해 정부가 2000여억 원씩이나 투자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올법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눈에 뻔히 보이는 범죄를 수수방관하는 게 과연 맞는가하는 의구심도 든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은 본인 신원 확인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스마트카드 형태의 신분증을 도입하는 추세에 있다. 선진국들이 국내 시민단체의 우려를 모른 채 막무가내 식으로 추진할 리 만무하다. 스마트카드 형태의 신분증 도입으로 사회 안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더 크게 보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좀 더 진전된 모습으로 전자주민증 도입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이길 기대해본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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