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지난 7월 8일 벤처기업협회가 주최한 `1000억 벤처기업 시상식` 특강에서 변대규 휴맥스 사장이 밝힌 말이다. 메디슨 · VK · 골드뱅크 · 새롬기술 등 많은 기업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변대규 사장이 이끄는 휴맥스만은 전 세계 셋톱박스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며 수많은 벤처기업인의 희망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제2의 변대규를 꿈꾸는 글로벌 IT CEO들이 탄생했다. 지식경제부와 전자신문이 중소 벤처기업 CEO의 사기진작과 글로벌화를 위해 제정한 제1회 글로벌 IT CEO상 수상자로 이장원 블루버드소프트 사장과 이재원 슈프리마 사장이 선정됐다.
두 사람은 전 세계 산업용 PDA와 지문인식 시장을 개척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첫 수상의 영예를 안은 두 사람은 동갑내기면서 이름도 비슷하다. 여기에 전공과목은 다르지만 대학도 동문이다. 첫 직장도 이장원 사장은 삼성SDS, 이재원 사장은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이다. 공통점이 매우 많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기를 겪는데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블루버드소프트는 처음 기업용 메신저 위주의 소프트웨어로 사업을 시작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곧 사업한계에 부딪혔다. 이때 눈을 돌린 게 산업용 PDA다. 그러나 이 시장에는 이미 심벌 · 후지쯔 · 캐논 등 `빅 자이언트`가 포진하고 있어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사장은 “첫 1년 동안 주문이 100여대에 불과했으며 1000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후발주자가 비집고 들어가는 길은 기술로 승부를 보는 것이었다. 채용 직원도 연구개발(R&D) 인력이 중심이 됐으며 매출의 15%, 영업이익의 30%를 R&D에 투자했다. 이 결과, 2003년 이후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올해는 30만대 수출을 바라보고 있다.
이재원 사장 또한 사업 초기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01년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윤태식 게이트`의 중심에 있던 기업이 지문인식 업체인 패스21이었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이 사장은 사업의 실마리를 해외시장에서 찾았다. 그러나 유명 전시회에 부스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니 브로셔를 나눠주며 얼굴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슈프리마가 이제는 첨단 알고리듬과 센서 기술 개발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보안 강국에 토종 지문인식 모듈을 수출하며 세계 바이오 보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블루버드와 슈프리마는 아직 완성된 기업은 아니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좁은 내수 시장을 넘어 무한대로 뻗은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오직 `기술로 승부를 건다`는 모토로 전 직원이 뭉쳐 있다는 사실도 강점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다. 선진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대기업이 수출을 주도하고 있지만 분야마다 수많은 강소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좌우하며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글로벌 IT CEO상의 제정도 이 같은 강소기업을 많이 발굴하자는 취지다. 아무쪼록 이 상이 제2의 변대규와 휴맥스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홍승모 전자담당 부장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