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눈물의 연평도

제주도보다 가기 어려운 섬.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이른바 서해 5도다. 때로는 사람이 살지 않고 해병 부대원 60여명만 상주하는 우도를 빼고 소연평도를 넣기도 한다. 이곳은 현지 주민을 제외하고는 외지인의 발길이 잦지 않아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평소 관심 밖에 있던 서해 5도. 이 가운데 연평도가 지난달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우리 해병대원 두 명과 군부대 공사를 하러 들어간 민간인 두 명이 사망하고 마을은 쑥대밭이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느닷없는 포격에 놀란 섬 주민들은 눈물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서해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연평도가 또 한 번의 ‘눈물의 연평도’로 변한 것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 141㎞, 북한 황해도 부두리와는 불과 10㎞ 거리에 있는 연평도는 1958년까지 조기 파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동중국해에서 한겨울을 난 조기떼들이 이른 봄 알을 낳기 위해 흑산도 앞바다를 지나 수심이 얕은 연평도 주변 바다에서 산란을 시작할 때 쯤되면 전국에서 수 천척의 고깃배들이 연평도 앞바다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때 고기와 돈이 넘쳐나 주체할 수 없는 어부들의 주머니를 노린 여인네들이 연평도로 들어와 술집 또한 문전성시였다고 한다.

행복한 섬 연평도가 눈물의 연평도로 변한 사연은 태풍 사라호 때문이다. 1959년 9월 최대 풍속 85m로 당시 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력한 사라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갈 때 연평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수 백척의 어선이 부서지고 죽은 어부들의 시체가 바다를 뒤덮었다고 한다.

“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 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1960년대 가수 최숙자가 부르고 1970년대 조미미가 리바이벌한 ‘눈물의 연평도’ 가사다.

1980년대 이후 어로 장비 발달과 중국 어선의 싹쓸이로 연평도까지 오는 조기는 거의 줄어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 이제는 그 자리를 꽃게잡이가 대신하며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으로 연평도는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었다. 그러던 연평도가 절망의 섬, 공포의 땅으로 변했다.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우리 사회 많은 문제를 던져줬다. 군의 대응체계 미비는 말할 것도 없고 IT강국이라고 자부한 대한민국의 국가 재난통신망의 허술한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전력과 통신망이 두절되면서 외부와 연락이 끊겼을 뿐 아니라 방공호에는 유선전화 한 대조차 없었다고 한다. 연평도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북한포의 사정거리에 있는 나머지 서해 4개 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옷가지 하나 변변히 챙겨 나오지 못한 많은 연평도 주민들은 인천의 한 찜질방에서 새우잠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부는 영구 이주를 원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상황이 진정되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제 정부와 군은 연평도가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연평도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이며, 연평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홍승모 전자담당 부장 smhong@etnews.co.kr